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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윤종)튜브]음악에 동방의 향취를 더하는 향료 ‘솔#’

입력 | 2021-09-28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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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상스는 오페라 ‘삼손과 델릴라’에서 동방의 음계를 이용해 이국의 정취를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가 2018년 공연한 ‘삼손과 델릴라’. 동아일보DB


올해 서거 100주년을 맞은 프랑스 국민주의 음악의 대가 생상스는 생전 13편이나 되는 오페라를 썼다. 푸치니보다도 많은 숫자이지만 이 중에서 오늘날 세계 오페라극장의 표준 레퍼토리로 정착한 작품은 ‘삼손과 델릴라’(1877년) 단 한 곡이다. 구약성서 판관기(사사기)에서 블레셋인과 싸운 영웅 삼손의 이야기를 극화했다.

2막에서 힘의 근원인 머리카락을 잘린 삼손은 블레셋인들의 포로가 된다. 3막에서는 삼손을 묶어 꿇어앉힌 블레셋인들이 흥겨운 축제를 펼친다. 이때 관현악의 연주와 함께 펼쳐지는 발레 장면을 ‘바카날’이라고 부른다. 로마시대 술의 신 바쿠스를 찬미하던 축제처럼 난잡하고 광포하게 펼쳐지는 축제 장면을 가리키는 말이다.

장면 시작부터 오보에의 아련한 선율이 귀에 쏙 들어온다. A단조의 ‘라-솔#(샤프)-파-미’로 이어지는 선율이다. 듣는 순간 아랍 세계의 아련한 환영이 머리에 떠오른다. 현악기의 흥겨운 리듬과 함께 분위기가 고조되고, 이번에는 여러 목관이 번갈아 D단조로 ‘시도시라솔#/시라솔#파미’의 멜로디를 연주한다. 예전 청소년 대상 강의에서 이 부분을 들려주고 물었다.

“어떤 느낌이 들죠?”

“뱀 나오는 것 같아요.” “터번을 쓴 사람이 피리를 불며 코브라를 놀리는 느낌요.”

이 음악의 어떤 요소가 뱀을 떠올리게 했을까. 이 장면의 주요 선율은 ‘헝가리 집시 음계’로 되어 있다. 통상의 단조 음계는 ‘라-시-도-레-미-파-솔’ 7음을 사용하지만, 이 음계에선 ‘레’대신 레#, ‘솔’ 대신 솔#가 들어간다.

낭만주의 시대부터 서양 음악가들은 동방이나 아랍의 분위기를 내고 싶을 때마다 솔#를 중심으로 선율이 ‘놀게’ 하면서 이국적 분위기를 강조했다. 헝가리 집시 음계 외에 ‘아랍 음계, 집시 음계’로 불리는 ‘이중화성음계’도 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솔을 솔#로 바꾸는 점은 같다.

‘집시풍’이란 뜻을 가진 사라사테의 바이올린곡 ‘치고이너바이젠’도 이 음계를 사용했다. 곡 서두에 반주부가 강렬한 서주를 울리고, 바이올린이 미끄러지듯이 올라가는 음계(스케일)를 연주한다. 전형적인 C단조의 헝가리 집시 음계다.

서양 클래식 음악만 이런 음계를 쓰는 건 아니다. 노라조가 부른 가요 ‘카레’를 들어보자. 전주부터 C#단조로 솔#가 두드러진 색깔을 내며 이국의 분위기를 강조한다. 커리 향이 코에 스며드는 듯하다. 아랍과 인도는 다른 문화권이지만 실제 두 문화권 모두에서 서양 음계의 ‘파-솔#-라’로 해석되는 음계가 주로 사용된다. 읽기만 해서는 알 수 없으니 직접 들어보기 권한다. 백독(百讀)이 불여일청(不如一聽).

그런데 낭만주의 이전에는 사정이 달랐다. 모차르트나 베토벤 등 고전주의 시대의 여러 음악가가 ‘터키 행진곡’을 썼다. 실제 터키 군악대의 리듬을 모방한 행진곡이었지만 이 시대에는 터키의 음계까지 모방하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사용한 터키 행진곡은 ‘터키 리듬, 서양 음계’를 사용한 반쪽짜리라고 할 수도 있다. 러시아 바이올리니스트 알렉세이 이구데스만과 한국 출신 피아니스트 주형기의 ‘이구데스만 앤드 주’ 듀오가 이 점에 착안해서 터키 음계를 차용한 새 ‘모차르트 터키 행진곡’을 선보이기도 했다.

낭만주의 작곡가들은 아예 음계를 흩뜨리는 반음계 선율로 동방의 느낌을 강조하기도 했다. ‘삼손과 델릴라’에서 여주인공 델릴라가 삼손을 유혹하는 노래 ‘그대 목소리에 내 마음 열리고’도 천천히 반음으로 하강하는 선율이 고혹적인 아랍의 ‘팜 파탈’(치명적인 여주인공)을 묘사한다. 같은 시대 비제의 오페라 ‘카르멘’에서 카르멘이 부르는 ‘하바네라’도 마찬가지다.

국립오페라단이 생상스 서거 100주년을 기념해 10월 7~10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삼손과 델릴라’를 공연한다. 삼손 역에 테너 크리스티안 베네딕트와 국윤종, 델릴라 역에 메조소프라노 이아경과 김정미가 출연한다. 국내 무대에서 여러 차례 높은 평가를 받은 세바스티안 랑레싱 지휘, 아르노 베르나르 연출이라는 ‘믿을맨’들의 프로덕션이다. 생상스 특유의 화려한 관현악과 함께 중동 여행이 취미였던 그가 묘사한 ‘중동의 향기’도 느낄 수 있는 기회다.



유윤종 문화전문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