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사업장에서 근로자가 일하다 사망하거나 1년에 3명 이상 급성중독·열사병 등에 걸리면 경영 책임자가 처벌받게 된다. 그러나 산업 현장에서는 처벌 대상인 경영 책임자의 범위가 모호하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정부는 28일 국무회의를 열어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률(중대재해처벌법) 시행령’ 제정안을 의결했다.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상의 문제로 발생한 사망, 부상, 질병을 중대재해로 보고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게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형을 내리는 게 골자다.
시행령 제정안은 우선 직업성 질병으로 화학물질 노출로 인한 급성중독, 보건의료 종사자가 겪는 B형 간염, 열사병 등 24개를 열거했다. 한 사업장에서 1년 동안 3명 이상의 근로자가 동일한 유해 요인에 따라 이들 질병을 앓게 되면 중대 산업재해로 인정된다. 다만 노동계가 요구해 온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 암 등은 포함되지 않았다.
만약 중대 산업재해가 발생한 사업장이 이 같은 의무조치를 지키지 않은 사실이 드러나면 경영 책임자가 징역형 등 처벌을 받게 된다. 하지만 경영 책임자의 구체적인 범위는 끝내 시행령에 담기지 않았다. 그동안 경영계에서는 처벌 대상이 되는 경영 책임자가 본사 대표인지, 계열사 대표인지, 안전보건 대표인지 모호해 현장 혼란이 커질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근로계약관계가 명확하지 않은 경우에도 비슷한 혼란이 예상된다. 예를 들어 배달기사가 산재사망사고를 당했을 경우 플랫폼 업체, 배달대행업체 중 누가 책임을 져야 하는지 모호하다. 고용부 관계자는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배달시간이나 배달경로 등을 관리한 경우 중대 산업재해의 책임을 져야한다”면서도 “배달기사들의 계약관계가 복잡한 만큼 구체적인 사안마다 달리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중대재해법의 불명확성이 시행령에서도 구체화되지 못해 향후 법 집행과정에서 자의적 해석 등 많은 혼란과 부작용이 우려된다”고 밝혔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정부가 40일간 노사단체 의견 수렴을 했지만 노동계 의견은 대부분 반영되지 않았다”며 “껍데기뿐인 법으로는 노동현장의 안전보건 문제를 개선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서동일 기자 d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