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에서 미래를 찾는다]된장 명인 ‘오색담은’ 조연순 사장
조연순 씨가 충북 충주시에 있는 자신의 장류제조 공장에서 항아리 속 된장을 들여다보며 숙성 상태를 점검하고 있다. 앞마당에 늘어선 항아리 600여 개는 장의 종류, 숙성 시기별로 구분돼 있다. 숙성이 완료된 장은 옆쪽의 포장 공장으로 옮겨져 제품화된다.
충북 충주에 사는 조연순 씨. 일찍 결혼한 그녀는 38세에 고3 수험생을 둔 학부모다. 고3뿐 아니라 고1, 중2, 초등5, 7세 등 5명의 자녀를 뒀다. 요즘 최고의 애국자인 ‘다둥이 엄마’다.
자녀 양육만으로도 바쁜 조 씨는 장류 제조 사업도 벌이는 ‘커리어 우먼’이다. 브랜드명은 ‘오색담은’. 품목별로 1호 된장, 2호 막장, 3호 간장, 4호 고추장, 5호 청국장으로 이뤄졌다. 자녀들을 생각하며 이름을 지었다는 그녀는 “독수리 5형제 콘셉트”라고 말했다.
최근 충주시 직동에 있는 조 씨의 일터를 찾았을 때 앞마당에 늘어선 600여 개의 항아리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어엿한 ‘여 사장님’이지만 2003년 결혼했을 때는 평범한 농부의 아내였다. 결혼 후 10년 동안 남편과 함께 5000평의 임대 토지에 과일 농사를 지었지만 수익은 변변치 않았다. 어느 날 복숭아 농사를 짓고 남는 자투리땅에 콩을 심으면서 사업의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다. 직접 기른 콩으로 메주를 담그고 그 메주로 된장 간장 등을 제조하는 장류 사업에 도전하기로 했다.
시어머니의 된장은 주변에서 “깊고 구수한 맛이 난다”는 칭찬을 자주 들었다. 시어머니 뒤를 따라다니며 받아 적었다. 시어머니가 “눈대중, 손대중으로 해야지”라고 할 때도 조 씨는 철저히 그램 수를 따지고 시계를 보며 시간을 계산했다.
젊은 세대에게 가까이 다가가려면 장 특유의 냄새를 줄이고 염도를 낮춰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콩을 씻어 발효시키는 메주 만들기 과정, 항아리에 넣어 소금물을 붓고 치대는 된장 담그기 과정 등을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표준화 작업이 필수적이었다. 전문 서적을 뒤져가며 발효균을 공부했고, 성분검사를 위해 충북농업기술원을 자주 드나들었다.
“염도를 조절하고 감칠맛을 내기 위해 여러 식재료를 엄선해 장에 섞어보기도 했습니다. 또 소금물에 육수를 추가하는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지만 신맛이 나거나 너무 묽어 제대로 숙성되지 않았습니다. 버린 된장만 1t 트럭 여러 대 분량이 될 거예요.”
“버섯을 넣어 감칠맛은 유지하면서 염도는 낮출 수 있었습니다. 여기에 지역농산물인 표고버섯을 사용해 농가끼리 상생할 수 있으니 일거양득이죠.”
요즘 효자 품목은 청국장이다. 제조 기간이 48∼52시간으로 짧고, 일반 장류와 달리 냉장식품이어서 제품 회전율이 빠르다. 지난해 매출액 3억3000만 원 가운데 80%는 청국장이 차지했다. 카카오쇼핑에서 ‘오색담은’ 청국장이 가장 잘 팔린다는 것이 조 씨의 설명이다. 오프라인에서는 농협 하나로마트가 주요 판매망이다.
영농인들은 수확기에 목돈을 마련할 수 있지만 매달 안정된 수입은 기대하기 힘들다. 조 씨도 고정 수입을 가진 직장인이 되는 것이 한때 ‘로망’이었다. 일찍 결혼하느라 중퇴했던 대학을 아쉬워하며 자격증을 따 취직할 생각에 골몰했던 적도 있었다. 안정된 수입에 도움을 준 것이 청년창업농 영농정착지원 프로그램이었다.
“2019년부터 받고 있는 정착지원금이 고정 수입 역할을 했습니다. 주로 공장 운영비와 식비 등에 지출했습니다.”
“한국 사람은 어쩔 수 없는 한국 사람입니다. 손에 메주를 묻혀 가며 장을 만들다 보면 처음에는 냄새 때문에 얼굴을 찡그리지만 곧 마음이 편해진다고 하죠.”
글·사진 충주=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