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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전환적 혁신정책의 시대다[기고/염한웅]

입력 | 2021-09-29 03:00:00

염한웅 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


혁신(革新). 표준국어대사전은 이 단어를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꿔서 새롭게 한다’고 정의한다. 일반적으로 기존의 산업 구조를 파괴적으로 바꾸는 새로운 기술과 상품, 서비스 등을 창출하는 정책 과정을 혁신정책이라고 일컫는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면서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내걸었던 경제정책 양대 축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혁신’ 성장 정책이다.

물리학 연구와 연구개발(R&D) 정책 자문이 필자의 본업이나 현 정부 혁신 성장 정책은 과거 정부의 산업정책과 별반 다르지 않아 비판하지 않을 수 없다. 혁신정책의 기본 내용은 신기술에 대한 투자와 규제 개혁은 물론이고 기초연구 투자, 혁신 인력 양성, 기술이전 시스템 구축, 지식재산권 보호, 혁신 제품 서비스 조달을 포함한 포괄적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다. 정부 초기에 충분한 이해 없이 추진하다 보니 부처별로 8대 혁신성장동력, 13대 혁신성장동력 등 전략이 혼재돼 사용되기도 했다. 이후에는 시스템반도체, 바이오, 인공지능(AI) 등 분야가 새롭게 대두되어 이른바 빅3가 됐다. 지금 이 시점에서 현 정부의 혁신정책과 혁신성장동력이 무엇인지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제대로 된 혁신정책을 펼쳐 보지도 못한 것이다.

AI, 양자기술 같은 새로운 산업과 기술이 닥쳐와도 국가적으로는 기초역량이 부족하다고 아우성이며, 대응 인력이 공급되지 않을뿐더러 근시안적 인력정책으로 소부장, 반도체, 바이오 등 기존 산업 인력조차 유지되지 않는다. 이미 개발이 끝난 유망기술과 산업에 집중 투자하는 정책들을 써왔으니 혁신역량과 인력이 부족한 것은 당연한 결과다.

하지만 확대 재정 기조와 맞물려 국가 R&D 투자 100조 원, 정부 R&D 예산 30조 원 시대가 열렸다. 다시 한 번 혁신과 혁신정책의 기본 개념으로 돌아가 국가시스템을 정비해야 한다. 창의적 과학기술에 투자하고 창의적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

더구나 이제는 정부가 다뤄야 하는 혁신의 범위가 기존의 경제정책을 크게 넘어서고 있다. 감염병, 기후변화는 물론이고 유례없는 인구 고령화의 위기를 다뤄야 한다. 이러한 위기는 경제구조를 송두리째 뒤집어 놓을 파괴력으로 세계의 산업구조를 이미 변화시키고 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 개발의 수요는 가히 천문학적이다. 이러한 대전환은 혁신정책이 완전히 새로운 차원의 임무와 구조를 갖도록 요구하고 있다. 분명한 목표와 로드맵에 따라 기술혁신과 산업구조 개편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임무지향적’ 혁신정책이 당장 필요해진 것이다.

우리로서는 서둘러 기존 혁신정책을 업그레이드해야 하는 상황이다. 대통령직속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는 이미 작년 말에 감염병, 기후대응, 고령화 등 공공임무를 지향하는 연구개발을 대폭 확대하고 이를 위한 연구개발 추진체계를 마련하도록 요청한 바 있다. 이젠 연구개발의 틀을 넘어서 국가 전체적으로 경제정책과 통합된 전환적 혁신정책이 당장 필요하다. 위기는 이미 바로 우리 곁에 와 있다.


염한웅 과학기술자문회의 부의장·포스텍 물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