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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한 꾸밈보다 정성” 日심야식당 같은 선술집, 고독한 미식가 되어볼까[석창인 박사의 오늘 뭐 먹지?]

입력 | 2021-09-29 03:00:00

서울 송파구 ‘동락’의 돼지고기된장절임. 석창인 씨 제공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음식에 관해 쓸 때 스스로 검열을 하는 몇 가지 주제가 있습니다. 친환경 유기농, MSG, 유전자조작 농산물, 채식·육식주의 등인데, 무엇이 옳다 그르다를 떠나 건강과 환경, 나아가 이념 문제까지 맞물린 논쟁적인 단어들이라 무척 조심스럽지요. 이는 우리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고 글로벌한 주제여서 이를 다룬 책자들이 꽤 많고 심지어 ‘음식 좌파, 음식 우파’라는 책도 있습니다.

이에 못지않은 민감한 주제가 일본 음식입니다. 일식이나 일본 식당에 대한 일반적 소개 글은 문제 될 게 별로 없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칭찬하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어느 유명 음식평론가는 한식 일부가 일본에서 유래됐다고 말했다가 누리꾼들의 반발을 샀죠.

하지만 요즘 젊은층은 오마카세, 갓포, 이자카야, 구시아게, 시메사바 등 일본 음식 용어를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습니다. 일본 사람들은 한류 드라마나 케이팝에 열광하고 우리는 일본 음식에 깊이 빠졌는데, 다른 분야의 갈등 때문에 서로 쉬쉬한다면 이런 인지부조화도 없을 테지요.


서울 송파구에 가면 ‘동락’이라는 작은 일본식 선술집이 있습니다. 동고동락(同苦同樂)의 줄임말이겠거니 했는데 ‘노소동락(老少同樂)’이라는군요. 저 같은 흰머리도 젊은 친구들 옆에 어울려 앉을 수 있다는 말도 됩니다. 이곳은 드라마 ‘심야식당’처럼 요리사 혼자 음식을 뚝딱 만들어 내놓으며 손님들과 세상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곳입니다. ‘고독한 미식가’의 주인공 같은 손님도 말문을 열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요리를 전공하지 않은 아마추어들이 요식업에 진출하는 사례가 많아졌다지요. 일본통 외교관 출신이 글을 쓰면서 우동집을 한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제 친구도 일본 대기업 임원으로 퇴직한 뒤 식당을 열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동락’ 주인도 지리학을 전공한 대학교수였는데 조기은퇴를 하고 작은 선술집을 열었다는군요.

이곳 음식은 호텔 출신 셰프들의 일식당이 보여주는 화려한 꾸밈새는 아니고, 일본 가정집에 초대받았을 때 볼 수 있는 정성 가득한 메뉴들로 구성돼 있습니다. 돼지고기된장절임과 어묵 삼총사가 대표 메뉴이고, 닭튀김과 고등어초절임 수준도 예사롭지 않습니다. 재료 준비를 많이 해놓았는지 음식을 금세 만들어 내면서도 손님들의 질문에 해박한 지식으로 친절하게 답해줍니다. 손맛 가득한 음식은 기본이고 덤으로 지리학은 물론 제가 관심 있는 일본 근세사에 관한 궁금증까지 시원하게 설명해주니 과거 양주동 박사님 말마따나 박이정(博以精) 즉, 넓으면서도 깊은 지식 그 자체입니다.

여담입니다만 이태원의 어느 선술집에서 식감과 향이 좋은 산마구이를 주문했는데 시간이 너무 걸리는 겁니다. 생맥주 한 잔 다 비울 즈음 난데없는 꽁치구이가 나왔지 뭡니까. 아하! 꽁치가 일본말로 산마였군요. 한편으로는 이것이 두 나라의 현주소 같아 산마 맛처럼 쌉싸름합니다.

석창인 석치과 원장·일명 밥집헌터 s2118704@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