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얼떨떨…” 황동혁 감독 인터뷰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오징어게임’을 연출한 황동혁 감독. 그는 드라마 성공 비결로 단순한 게임들로 극을 구성한 점을 꼽았다. 넷플릭스 제공
전 세계를 강타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오징어게임’의 황동혁 감독(50)은 28일 언론 공동 인터뷰에서 “전 세계적인 열풍은 예상치 못해 얼떨떨하다”고 했다. 스스로 오징어게임이 “망작 아니면 걸작”이 될 거라 생각했었다고.
결말은 ‘초특급 걸작’이 됐다. 한국 드라마 최초로 넷플릭스 세계 스트리밍 순위 1위에 오르며 전 세계에서 패러디 열풍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넷플릭스 공동 최고경영자(CEO)인 테드 서랜도스는 27일(현지 시간) “오징어게임은 넷플릭스가 선보인 모든 작품 중 가장 큰 작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황 감독도 이날 “넷플릭스 역사상 가장 인기 있는 작품이 됐으면 하는 욕심도 생긴다”고 했다.
○ 세계인 사로잡은 단순함
극중 ‘456번 참가자’ 성기훈(이정재). 황 감독은 2009년 ‘쌍용차 사태’로 해고된 이들의 이야기를 참고해 이 캐릭터를 만들었다. 넷플릭스 제공
“게임물은 자칫하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가 되고 소수 마니아만을 위한 작품이 될 가능성이 크거든요. 저는 굉장히 현실적인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어요. 판타지적 요소와 현실적인 요소의 균형을 맞추는 데 공을 들였죠.”
황 감독이 처음 이 작품을 구상한 건 2008년. 당시엔 소재가 낯설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는 “슬프게도 이제는 살벌한 서바이벌이 잘 어울리는 세상이 돼 오히려 현실감 있다는 평가를 많이 듣는다”며 “전 세계가 주식과 코인 등으로 일확천금을 노리고 있는 만큼 소재가 공감을 끌어낸 것 같다”고 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극중 게임 6개를 선택한 이유에 대한 관심도 높다. 일각에선 줄다리기, 구슬치기 등은 여성에게 불리하다며 ‘여성 차별’이라는 주장까지 나왔다. 황 감독은 “공기놀이나 고무줄놀이도 생각해봤지만 긴장감 면에서 아쉬웠고 룰도 어려웠다”며 “전 세계를 목표로 가장 단순한 게임을 찾다 보니 빠진 게임들이 좀 있다”고 했다. 패러디 열풍을 불러온 딱지치기에 대해선 “실뜨기로 해볼까 하는 생각도 했었다. 두 남자가 실뜨기하는 광경이 웃길 것 같았다”며 “그런데 역시 룰이 어려웠다”고 했다.
황 감독이 꼽은 ‘오징어게임’의 주제에 가장 부합하는 게임은 뭘까. 그는 ‘징검다리 건너기’를 꼽았다. “앞사람이 희생해야 뒷사람이 끝까지 가 이길 수 있는 게임이잖아요. 이 사회의 승자인 사람들은 결국 패자들의 시체 위에 서있는 것이고, 그 패자들을 기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은 거죠.”
○ ‘한국판 일확천금’ 456억 원
게임 진행요원들과 참가자들이 모여 있는 장면. 황 감독은 작품 구상 초기 1000명이 상금 100억 원을 놓고 경쟁한다고 설정했다가 ‘456명 참가, 456억원 상금’으로 바꿨다. 넷플릭스 제공
주인공 성기훈(이정재)은 자동차회사 ‘드래곤모터스’에서 일하다 해고된 뒤 바닥까지 추락하는 인물로 나온다. 2009년 쌍용차 대량 해고 사태를 연상시키는 설정이다. 황 감독 역시 쌍용차 사태를 참고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누구나 기훈과 같은 입장이 될 수 있죠. 잘 다니던 직장이 도산할 수도 있고, 지금도 자영업자들이 위기에 몰리고 있고요. 그런 이들을 대표하는 인물로 그려보고 싶었습니다.”
오징어게임의 인기에 편승해 정치권 등에서는 연일 이 단어를 언급하고 있고, 논란의 대상이 된 인사가 자신을 작품 속 인물에 빗대는 경우도 있다. 이런 상황에 대해 황 감독은 “창작자가 어떤 작품을 내놓으면 그 작품은 창작자의 손을 떠난 것”이라며 “수용자들이 작품을 다루는 문제에 대해 내가 입장을 가지는 건 적절한 태도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제 전 세계인들의 관심은 시즌2 제작 여부다. 작품 결말엔 다음 시즌의 여지를 남기는 듯한 장면이나 대사가 많다. 황 감독은 “시즌2를 안 만들면 난리가 날 것 같은 분위기”라고 웃으면서도 확답은 하지 않았다.
“시즌1을 만들면서 매일 밤 잠을 못 자 스트레스 지수가 100이었죠. 시즌2를 하면 아예 틀니를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 고민입니다.(웃음)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림이 몇 가지 있는데 우선 영화 한 편을 만들고 그 뒤에 좀 더 얘기를 해봐야 할 것 같아요.”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