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계신 양아버지가 돌아가시며 제게 남긴 유산이 145억 원이에요. 미국 국세청에 상속세를 선납해야 하니 돈을 좀 빌려 줬으면 해요.”
2014년 4월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커피숍. 통·번역 일을 하는 염모 씨(38·여)는 평소 알고 지내던 사업가 김모 씨에게 이 같이 말하며 상속재산 증명서 영문 서류를 내밀었다. 염 씨는 수년 전부터 김 씨에게 자신의 양아버지가 상당한 재력가라고 소개해왔다. 하지만 염 씨에게 그런 양아버지는 존재하지 않았고, 증명 서류도 위조 서류였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9부(부장판사 김창형)는 2010년부터 2019년까지 상속세 선납 대금과 생활비 등의 명목으로 김 씨에게서 71억9000만 원을 편취한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법상 사기) 등으로 기소된 염 씨에게 징역 9년을 선고했다고 지난달 30일 밝혔다.
재판부는 “염 씨가 재력가인 김 씨와 친분이 생긴 것을 기회로 각종 거짓말로 김 씨를 속여 거액을 편취했다”며 “그럼에도 통·번역 업무의 대가였다는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으로 일관하며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성 기자 kts5710@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