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을 달리는 황용환 씨 가족
황용환 씨 가족이 트레일러닝 대회에 출전해 함께 산을 오르고 있다. 황용환 씨 제공.
직장인 황용환 씨(41)는 2017년 초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심리적으로 힘들었을 때 무작정 집 근처(경기 남양주 별내) 불암산을 오른 뒤 스트레스가 확 날아가는 기분이 들었다. 자연을 느끼며 정상에 올랐을 때 힘들었지만 해냈다는 성취감도 느꼈다. 산이 좋아질 때 쯤 아는 동생이 산을 달리는 트레일러닝 대회가 있으니 나가보는 것은 어떠냐고 조언했고 그해 4월 말 경기 동두천에서 열린 코리아 50K 트레일러닝 10km 부문에 출전하면서 그는 트레일러닝에 빠져 들었다. 지금은 아내와 두 자녀까지 함께 달리는 ‘가족 스포츠’가 됐다.
“산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매일 보았던 불암산이 멋있다는 생각은 하고 있었는데 막상 올라가니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당시는 트레일러닝이 큰 인기를 끌 때가 아니었어요. 아는 동생이 말하기에 여기저기 검색했는데 정보가 별로 없더라고요. 그 때 사막마라톤 등 오지 마라톤 전문가인 유지성 대장이 개최하는 코리아 50K가 눈에 들어왔고 신청해서 달렸는데 너무 좋았습니다. 완주하는 순간 일하면서 받은 스트레스와 좌절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어요.”
“산을 달린다는 것은 꿈도 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달려보니 너무 좋았어요. 다소 위험하고 힘들기는 하지만 자연 속에서 나무와 꽃, 돌, 바위, 개울 등을 보며 달리는 기분이 좋았어요. 무엇보다 그 힘겨운 과정을 지나 결승선에 들어올 때 느끼는 쾌감은 뭐라 형용할 수 없었습니다.”
아이들이 어려 남편이 주로 달리고 아내는 가끔 남편과 함께 달린다고 했다. 아이들과는 연중행사로 진행하고 있다고.
황 씨는 2017년 트레일러닝 10km 3회를 완주한 뒤 바로 50km 레이스를 준비했다.
“10km를 달리고 들어와서 놀고 있으면 50km에 출전한 사람들이 들어옵니다. 50km는 새벽에 출발시켜 10km 끝날 때쯤 들어오거든요. 그런데 아주 평범한 아저씨들이 힘들지만 행복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고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솔직히 그 무렵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좌절감과 패배감에 싸여 있었거든요. 선수도 아닌 아저씨들이 해냈다는 성취감에 행복해하는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사실 산을 50km 달리는 것은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당시 코스가 역대 최고로 어렵다는 평가가 나왔어요. 열심히 연습해 나갔는데 중간에 포기할까 생각할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참고 골인을 했더니 세상이 달라졌습니다. 그 성취감이란…. 무엇보다 거의 꼴찌로 들어왔는데 미리 완주한 사람들과 대회 관계자들이 박수치며 응원하는 모습에 더 기분이 좋았습니다.”
황용환 씨 가족이 지난해 7월 열린 하이원 스카이러닝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함께 달리고 있다. 황용환 씨 제공.
아내 김 씨도 2018년 5월 강릉 TNF100 대회에서 50km를 완주했다. 처음이자 마지막 50km 완주였다. 김 씨는 “트레일러닝 대회를 나가거나 어려운 산행을 하면 너무 힘들고 아플 때도 있어서 다신 안하고 싶은 생각이 드는데 이상하게 또 하게 되는 매력이 있다”고 했다.
황 씨는 2019년엔 트레일러닝 100km를 완주했다. 50km를 자주 완주하다보니 자연스럽게 100km가 들어왔다. 지금까지 50km는 10번 정도 완주했다.
2019년 5월 TNF 100km 대회. 사실상 110km를 달리는 대회였다. 제한시간 27시간 30분. 황 씨는 제한시간 약 1시간 전에 완주했다.
“TNF가 난이도가 낮은 편이라 첫 대회로 좋다고 판단해 출전했죠. 거의 뒤에서 90%로 들어왔습니다. 컨디션도 좋지 않았지만 졸려서 힘들었어요. 달리지 못하고 계속 걸었습니다. 하루가 지나 아침 해가 뜨고 오전 10시쯤 들어오는데…. 꼴찌에게도 박수를 쳐주며 응원해주는 참가자와 대회 관계자들 때문에 피곤이 한 방에 날아갔어요.”
황용환(왼쪽) 김미정 씨 부부가 트레일러닝 대회에서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황용환 씨 제공.
달리기는 하지만 마라톤을 즐기진 않는다. 그는 “마라톤은 트레일러닝을 하기 위한 연습을 위해서만 한다. 10km와 하프까지는 달려봤지만 풀코스는 달려보지 않았다. 산을 달리는 게 좋다”고 했다.
마라톤 10km는 45분에 달리만 트레일러닝 10km는 코스에 따라 1시간에서 1시간 넘게 걸린다. 50km는 보통 7~8시간, 힘든 코스는 10시간 정도에 주파한다.
“사실 산을 달린다고 하지만 달리는 구간은 10km 부문을 빼면 전체의 10% 미만이죠. 거의 대부분을 걷습니다. 어떻게 산을 계속 달릴 수 있나요? 기계도 아니고. 잘 달리는 사람들이 부럽지만 전 그렇게 달리고 싶지는 않아요. 천천히 즐기면서 달리면 됩니다.”
산을 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트레일러닝이 산을 달리기 때문에 극한의 스포츠라고 생각하는데 전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가족이 함께 달리는 스포츠입니다. 제가 아내와 아이들까지 함께 달리는 이유입니다. 물론 힘들고 위험하지만 자연 속에서 즐길 수 있는 최고의 스포츠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달릴 땐 10km에 참가한다. 아이들을 위한 대회가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 반응은 어떨까?
“솔직히 트레일러닝 하러 가자고 하면 처음엔 안 간다고 해요. 그럼 살살 달래면서 설득하죠. ‘완주하면 주변 사람들이 칭찬해줄 거야…’ ‘산을 10km 완주한 애들 있니?’ 그런데 이렇게 힘겹게 데리고 갔는데 완주하면 아이들이 너무 좋아해요. 특히 완주 메달에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현재까지 전 각 부분 약 30개, 아내는 5~6개, 아들은 3개, 딸은 1개의 메달을 가지고 있습니다.”
딸과는 지난해 7월 하이원 스카이러닝 트레일러닝 대회 때 처음 완주했다.
황용환 씨 가족이 산에 올랐다. 황용환 씨 제공.
황 씨는 아내와 새벽에 함께 달리며 몸을 만들고 있다. 집에서 고정식자전거를 타거나 간단한 웨이트트레이닝을 하는 등 홈 트레이닝도 한다. 주말엔 긴 산행을 한다. 아이들과 한 한 달에 1,2번 산을 오르고 있다. 황 씨는 가능한 오랫동안 트레일러닝을 즐기고 싶다고 했다.
“사실 트레일러닝을 천천히 준비해서 시작한 게 아니라 속칭 꽂혀서 시작해 처음에 무리를 많이 했어요. 몸이 준비도 되기 전에 심한 운동을 해서 잔 부상도 많았어요. 운동할 시간이 없어 한 번 할 때 몰아서 했죠. 당연히 역효과가 났죠. 즐기는 게 최고입니다. 요즘엔 저강도로 즐기면서 몸을 만들고 있습니다. 스트레칭과 필라테스 등으로 회복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습니다. 회복이 잘 돼야 산도 잘 달리더라고요.”
도전도 계속된다. 그는 10월 말에 열리는 영남알프스 하이트레일 나인피크 울주에 도전한다. 이 대회는 울산 울주 영남 알프스 산 9개를 달리는 지옥의 레이스로 국내에서 가장 힘든 대회다. 간월산 (1069m) 고헌산(1034m) 문복산(1047m) 가지산(1241m) 운문산(1188m) 천황산(1189m) 재약산(1189m) 영축산(1081m) 신불산(1159m). 상승 등반 고도만 9000m에 가깝다. 총 거리만 105km.
“올 5월엔 서울 둘레길 100마일(약 160km) 대회에 출전했어요. 정식 대회는 아니고 10명이 출전해 3명이 완주했는데 제가 3등을 했어요. 35시간 30분 만에 들어왔죠. 1,2등보다 13시간 뒤에 들어왔는데 많은 사람들이 기다려주면서 박수를 보냈죠. 트레일러닝 하는 사람들만이 느끼는 것이죠. 그 고생 아니까. 그런데 그 고생을 해야 즐거워요.”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