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합의 후 위안부 상처에 소금 뿌려 합의 복원으로 신뢰회복 계기 만들어야
박형준 도쿄 특파원
2015년 초여름이었다. 한일 간 최대 이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였다.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일본이 해법을 가져오라”며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정상회담 요청에 일절 응하지 않았다. 한일 외교당국은 물밑 협의를 진행했다. 그때도 기자는 도쿄 특파원으로 근무했었는데, 협의에 참여했던 한국 당국자가 사석에서 한 말을 아직 기억하고 있다. “위안부 문제만큼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내가 죽더라도 너의 갈비뼈 하나는 부러뜨리고 죽는다’는 각오다.”
그해 12월 28일 ‘위안부 합의’가 탄생했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시 외상이 방한해 기자회견을 열고 합의 내용을 발표했다. 일본 발표의 핵심은 일본군이 관여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책임을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하고, 총리 명의로 피해자들에 대한 사죄 반성을 표명함과 더불어 정부 예산(10억 엔)으로 위안부 명예회복 사업을 실시하겠다는 것이다. 한국 측은 일본이 표명한 것을 확실히 실시한다는 것을 전제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으로 불가역하게 해결됐음을 확인하고, 주한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 문제 해결에 노력하며 국제사회에서 서로 비난을 자제키로 했다.
한국에선 “10억 엔을 받고 일본에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위안부 합의 파기와 재협상을 공약했다. 당선 후에는 위안부 지원을 목적으로 만든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했다. 사실상 합의 파기다. 다만 올해 1월 기자회견에서 “양국 정부 간의 공식적인 합의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말했다.
기시다 총리는 지난달 말 토론회에서 “일본은 합의 내용을 모두 지켰는데 한국은 그러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동의하지 않는다. 아베 전 총리는 2016년 10월 국회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에게 사죄 편지를 보낼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털끝(毛頭)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최근 일본 정부는 교과서에 ‘종군 위안부’가 아니라 ‘위안부’로 표기하게끔 해 군과의 관련성을 애매하게 만들었다. 이는 위안부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언행으로 위안부 합의 정신에 위배된다.
본보는 최근 기시다 정권 출범을 계기로 한일 전문가들의 제언을 받았다. “양국이 협력해 뼈대만 남은 상태인 위안부 합의를 제대로 정착시키자”는 김진표 한일의원연맹 회장의 주장에 공감한다. 기자는 위안부 합의가 최선이라고 보지 않는다. 하지만 실현 가능한 차선은 된다고 본다. 양국 모두 합의를 지키는 것으로 신뢰 회복 계기를 만들 수 있고, 일본의 과거사 부정에도 제동을 걸 수 있다. 만약 이번 대선 후보들도 위안부 합의 파기 및 재협상을 주장한다면 ‘어떤 내용으로 어떻게 일본과 합의할지’ 분명히 밝혀야 한다. 대안 없이 비판만 하는 후보는 대통령 자격이 없다.
박형준 도쿄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