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윤상호 군사전문기자의 국방이야기]한미, 확장억제의 획기적 강화 결단 내릴 때다

입력 | 2021-10-05 03:00:00

지난달 28일 북한 자강도에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올해 초 개발을 공언한 극초음속 미사일 화성-8형이 시험 발사되고 있다. 사진 출처 노동신문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역시 믿을 건 핏줄밖에 없다는 것인가.” 최근 미국이 영국과 함께 호주에 핵추진잠수함(핵잠) 기술 제공을 골자로 한 외교안보 3자 협의체인 ‘오커스(AUKUS)’를 출범시키자 이런 얘기가 공공연히 나왔다. 오커스가 사실상 중국을 겨냥한 앵글로색슨 중심의 ‘핵동맹’이라는 얘기다. 실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핵잠 기술을 이전한 나라는 한 식구와도 같은 영국뿐이다. 백악관도 호주에 대한 핵잠 지원을 “단 한 번(one-off)의 예외”라고 못을 박아 핵기술은 동맹을 넘어 특수한 ‘이너서클’의 전유물임을 분명히 했다.

핵잠 기술 제공은 미국의 강력한 확장억제(Extended Deterrence) 조치와도 같다. 유사시 미국의 핵우산(핵전력) 및 첨단재래식 전력을 투입하는 것을 넘어 동맹국의 손에 치명적 비수를 쥐여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핵잠은 잠항 능력과 속도 등 전반적 성능에서 재래식잠수함을 압도한다. 더 나아가 영국 핵잠처럼 호주 해군의 핵잠에도 미국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인 트라이던트-2가 장착될 가능성도 있다. 트라이던트-2는 미니트맨3(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전략폭격기와 함께 미국의 3대 핵전력으로 꼽힌다. 이런 시나리오가 실현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전방위적인 대중 억지력을 갖추게 된다.

오커스는 중국의 군사굴기에 맞선 미국의 확장억제 강화라는 측면에서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의 핵능력 고도화가 가속화하면서 대한(對韓)확장억제가 머잖아 한계에 봉착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도발수법과 양상에서도 확장억제를 무력화하려는 의도가 뚜렷하다.

최근 ‘릴레이 도발’에 동원한 신형 장거리순항미사일과 열차 발사 탄도미사일, 극초음속 미사일 등은 핵을 싣고 한미 요격망을 돌파할 수 있는 신형무기들이다. 다양한 투발수단을 활용한 동시다발적 대남 핵기습으로 개전 초 한미연합군에 궤멸적 타격을 주는 동시에 미국의 확장억제가 가동되기 전에 전쟁을 종결짓겠다는 목적으로밖에 볼 수 없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월 초 전술핵 개발을 강조한 것도 이런 복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영변 내 원자로의 재가동 및 농축시설 확장 징후도 우려스럽기는 마찬가지다. 두 시설을 비롯해 북한 전역의 비밀시설에선 매년 핵무기 3, 4개 분량의 무기급 핵물질이 생산될 것으로 추정된다. 4, 5년 뒤에는 북한이 100개가 넘는 핵탄두를 보유한 ‘사실상의 핵보유국’ 행세를 하는 상황이 현실화될 것이 유력하다.

북한의 핵위협이 임계점을 넘기 전에 확장억제의 획기적 강화를 추진해야 할 때라고 필자는 본다. 우리 군이 아무리 첨단재래식 전력을 증강해도 북한의 파상적 핵위협에 대처하기에는 역부족일 수밖에 없다는 냉엄한 현실도 더 이상 외면해선 안 된다.

우선 나토식 핵공유(Nuclear Sharing)를 진지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최종 사용 승인을 전제로 유사시 한국군의 전투기나 잠수함에 전술핵을 탑재 운용할 경우 확장억제의 신뢰성과 실효성은 한층 강화될 것이다. 나토식 핵공유는 냉전시절부터 지금까지 실효적 억지력을 발휘해왔다. 더 정교하고 확실한 파괴력을 갖춘 전술핵을 가진 한미연합군을 상대로 북한이 ‘핵도박’을 감행할 확률은 ‘제로(0)’에 가깝다. 앞서 미 국방부 산하 국방대(NDU)도 2019년 한국, 일본과 전술핵을 공유하는 협정 체결을 제안하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고, 미 의회에서도 검토할 만하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미국이 개발한 ‘저위력 핵무기’를 확장억제 전력에 포함시키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육해공 어디서나 지하 깊숙이 숨은 북한의 지휘부와 핵·미사일 기지를 신속 정확하게 초토화하는 저위력 핵무기를 역내 또는 한반도 주변에 배치하면 한국은 비핵노선을 유지하면서 확장억제를 확대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한미를 겨냥한 북한의 핵무력이 진화를 거듭하는데도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가 확고하다면서 섣불리 종전선언을 거론하는 것은 북핵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되레 북한의 핵개발이 정당하다는 빌미를 주는 동시에 핵능력 극대화의 시간만 벌어주는 우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의 핵은 대한민국을 일순간에 파괴할 실체적 위협이자 주적(主敵)이라는 냉철한 인식을 바탕으로 한미동맹을 최대치로 활용해 확고한 대비방안부터 모색하는 것이 북핵 정책의 순리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