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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 판결 무시하는 법무부…“밀실 행정으로 난민 인권 침해” 지적[법조 Zoom in]

입력 | 2021-10-05 13:21:00

법무부 전경. © 뉴스1


법무부가 법원이 내린 문서 제출 명령이나 정보 공개 판결에도 불구하고 난민 관련 업무 지침을 공개하지 않고 있어 ‘밀실 행정’으로 인해 난민의 생존권이 위협 받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영문도 모르고 공항에 갇힌 콩고 출신 루렌도 가족


한국에서 난민 인정을 받기 위해 4개월 넘게 인천공항에서 노숙중인 앙골라인 루렌도 은쿠카 가족이 출입국·외국인청을 상대로 난민인정 심사를 받게 해달라는 행정소송에서 패소했다. 25일 인천공항 1터미널에서 만난 루렌도씨가 난민 심사 소송 패소 소식을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19.04.25.

5일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법원이 법무부에 대해 ‘난민 인정 심사·처우·체류 지침(난민지침)’을 제출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난민지침에 대한 정보 공개 청구를 받아들이라는 확정 판결을 선고했는데도 법무부는 이를 따르지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민지침은 난민 신청자를 난민으로 인정하는 심사에 관한 절차, 난민이 보장받는 처우와 행정 절차, 체류 자격 연장 등에 관한 절차와 기준 등을 담고 있다. 법무부가 이를 비공개 처리한 이상 난민은 임의로 체류 자격을 제한 받거나 불리한 처분을 받아도 그 이유를 알 수 없고 이의 제기도 어렵다.

실제로 ‘공항 난민’ 생활을 한 콩고 출신 앙골라인 루렌도 가족은 280일간 인천국제공항에 갇혀있었지만 영문도 모른 채 정식 난민 심사를 받지 못했다. 2018년 12월 28일 인천공항에 도착해 난민 신청을 한 루렌도 가족은 법무부로부터 ‘난민 심사 회부’ 결정을 받아야 정식으로 난민 심사를 받을 수 있는데 법무부 공항출입국·외국인청은 별다른 설명 없이 ‘난민 심사 불회부’ 결정을 내렸다.

법원이 루렌도 가족의 사정을 검토한 뒤 난민지침을 제출하라고 했지만 법무부는 이를 거부했다. 2019년 3월 인천지법은 루렌도 가족이 법무부를 상대로 “난민 심사를 받게 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법무부는 난민지침을 법원에 제출하라”는 문서 제출 명령을 결정했다. 법무부는 “난민 지침은 ‘법무부 부서 내부 업무 처리 방향’이기 때문에 대외 제공이 금지돼 있다”며 법원의 명령을 거부했다.

결국 2019년 10월 11일 서울고법이 “루렌도 가족에게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줘야 한다”고 판결을 내릴 때까지 루렌도 가족은 인천공항 43번 게이트 앞에서 숙식을 해결해야 했다. 루렌도 가족은 본국인 앙골라에서 콩고 출신이라는 이유로 차별에 시달렸고 택시 기사로 일하던 루렌도 씨는 앙골라 경찰차와 접촉 사고가 나 경찰에서 고문을 당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하지만 본국에서의 박해를 피해 한국에 와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10살도 되지 않은 루렌도 가족의 네 자녀는 인천공항에서 제대로 된 식사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법무부는 난민지침을 공개하라는 확정 판결도 따르지 않고 있다. 지난해 2월 7일 인천지법 행정2부(부장판사 김예영)는 루렌도 가족을 변호한 사단법인 두루 최초록 변호사가 법무부를 상대로 “난민지침 정보 공개를 거부한 처분을 취소해달라”고 낸 소송에서 “법무부는 난민지침 정보를 공개하라”고 판결했다. 재판부는 “법무부가 정보 공개를 거부한 처분은 위법하다”며 “법무부가 비공개 근거로 내세운 법률 조항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결국 서울고법의 2심 판결이 확정돼 루렌도 가족은 법원으로부터 난민 지위를 인정받았다. 법원 판결과 달리 법무부는 난민 인정 사유가 충분한 루렌도 가족에 대해 난민 심사를 받을 기회를 주지 않은 셈이다.


● “밀실 행정, 85%는 법원서 ‘잘못된 행정’이라고 판단”


최근에도 법원은 재차 난민지침을 공개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1일 서울행정법원 행정6부(부장판사 이주영)는 루렌도 가족과 최 변호사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난민지침 중 공개될 경우 국익에 영향이 있다고 보이는 정보, 구체적인 나라 이름 등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은 공개하라”고 밝혔다.

사단법인 두루 이상현 변호사는 판결 직후 “난민지침 비공개 때문에 불투명하고 예측가능하지 않은 난민 행정이 이뤄지고 있다. 기준 자체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이다”라며 “국제인권 기준이 요구하는 ‘절차의 투명성’이 확보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또 “기준이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불리한 처분을 받은 난민은 그 결과에 수긍하기 어렵고 기나긴 재판을 견뎌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 변호사는 공항 내 난민 신청자들에게 정식 난민 심사 기회를 부여하지 않은 법무부의 결정은 법원에서도 ‘잘못된 판단’이라고 인정됐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법무부의 밀실 행정은 자의적이고 잘못된 행정으로 이어지고 있다”며 “공항에서 난민 신청을 했지만 정식 심사에 회부하지 않은 법무부 결정에 대해 총 34건의 법원 판결이 내려졌고 그중 29건(85%)은 법원이 ‘법무부 결정이 잘못됐다’고 판단한 경우”라고 지적했다.

소 의원은 이날 동아일보와의 통화에서 “법무부가 난민 신청자에 대해 제대로 된 심사를 하고 있지 않다는 법원의 지적이 이미 여러 차례 있었다”면서 “난민 지침을 투명하게 공개해서 지침상의 조사 의무를 이행했는지, 충분한 심사 있었는지 점검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상준 기자 speakup@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