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전초전’으로 불리는 문재인 정부 국정감사가 이틀째인 5일에도 곳곳에서 파행을 겪었다. 여야가 각각 상대방 대선주자를 겨냥한 고발사주 의혹과 대장동 개발특혜 의혹으로 국감장에서 거칠게 맞붙으면서다.
특히 고발사주나 대장동 의혹과 관계 없는 국감장에서조차 이와 관련한 마스크나 피켓 사용 문제를 놓고 여야가 극한 대립하면서 국정감사가 제기능을 못한 채 또 다시 정쟁의 장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여야는 국감 2일차인 이날 오전 10시 법사위(법무부 등), 정무위(공정거래위원회 등), 기재위(기획재정부), 교육위(국가평생교육진흥원 등), 과방위(방송통신위원회 등), 국방위(국방부), 문체위(문화재청 등), 농해수위(농림축산식품부), 산자위(산업통상자원부), 환노위(환경부), 국토위(국토교통부 등), 행안위(경찰청)까지 총 12개 상임위에서 일제히 국정감사를 시작할 예정이었지만 대부분 상임위가 파행을 겪거나 시작이 지연됐다.
더불어민주당은 이를 ‘흑색선전’, ‘정치선동’ 등으로 규정하고 제거를 요구하며 국민의힘과 충돌했다.
우선 서울 용산구 청사에서 열릴 예정이었던 국방위원회의 국방부 국감은 국민의힘 의원들이 자리에 설치한 ‘이재명 판교 대장동 게이트 특검 수용하라’ 피켓을 놓고 민주당 의원들이 항의하면서 시작되지 않고 있다.
국방위 여당 간사인 기동민 민주당 의원은 기자들을 만나 “피켓을 제거해 달라, 대장동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했더니 그럴 수 없다고 해서 파행되고 있다”며 “오후에도 이렇게 된다면 정치 피켓을 국정감사장에 내건 채로 우리들은 (회의를) 수행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민주당은 피켓에 정치적 구호나 선전이 제거돼야 국방위 국감을 진행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국민의힘은 국방부 청사 로비에서 대장동 특검 피켓을 든 채로 기자회견을 열어 국감 개회를 촉구하고 나서 국감 진행이 가능할지 미지수다.
민주당 문정복 의원은 “오늘 50억 클럽 명단을 확보해 준비해왔는데 당 지도부가 국감을 정쟁화 시켜서 되겠느냐고 해서 발표를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야당이 이렇게 다 붙여놓으면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제가 이것을 밝히는 순간 국민들에게 국민의짐이 되는 것인데 감당하겠느냐. 좋은 말 할 때 (피켓을) 떼시고 국감을 하자”고 했다.
반면 국민의힘 김상훈 의원은 “국토위는 대장동 특혜 게이트와 연관이 있는 상임위”라며 “민주당이 대장동 게이트 관련 증인 채택을 전면 거부할 가능성이 크다. 이에 부착물을 통해 야당의 의사를 표현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의 농식품부 국감도 국민의힘의 대장동 특검 피켓과 마스크에 민주당이 항의하며 국감장에 들어오지 않아 시작 40여분 만에 정회가 선언됐고 결국 오전 국감은 중지됐다.
국민의힘 뿐만 아니라 민주당도 피켓으로 맞불을 놓으면서 파행을 겪은 국감장도 있었다.
야권 유력대선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부친이 화천대유 최대 주주 김만배씨 친누나 김모씨에게 집을 매각한 것과 국민의힘에서 탈당한 곽상도 무소속 의원 아들이 화천대유에서 50억원의 퇴직금을 받은 것을 겨냥한 것이다.
민주당 김성환 의원은 “산자위가 대장동, 화천대유하고 어떤 관계인지 알 길이 없지만 야당 측에서 대장동 게이트 특검 수용하라는 취지의 피켓을 든 것에 대해 매우 유감스럽다”며 “신성한 국장감을 이렇게 쟁점화하는 건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 김정재 의원은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사를 대변하고 정치 행위를 하는 자들이다. 대한민국을 뒤흔드는 이재명, 대장동 게이트를 침묵하면 누가 이 일을 제대로 파헤치나”라며 “특검을 통해 이 사건 진실 밝혀내야 한다. 피켓은 뗄 수 없다”고 반박했다.
여야의 설전 속에 산자위 국감은 20분 만에 정회됐다가 이후 재개됐다. 민주당은 소모적 정쟁을 이유로 피켓을 내리겠다고 했지만 국민의힘은 피켓을 그대로 부착키로 했다.
기획재정위원회의 기재부 국감 역시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피켓 대결 속에 오전 국감이 열리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은 민주당 소속인 윤후덕 기재위원장실을 항의 방문해 국감 개의를 요구했지만 윤 위원장은 대장동 개발사업 관련 인쇄물을 여야가 모두 제거해야 국감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산자위와 기재위에서 벌어진 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피켓 대결 속에 정의당과 기본소득 등 비교섭단체 소속 의원들은 ‘국정감사 안합니까. 적당히들 하세요’라고 성실한 국감 참여를 촉구하는 피켓으로 양당을 모두 꼬집기도 했다.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사에서 열린 행정안전위원회의 경찰청 국감은 예정보다 2시간이나 늦게 시작했다. 여야가 증인채택 문제로 국감 개의 자체가 늦어진 상황에서 국민의힘 의원들이 착용한 대장동 특검 요구 마스크가 논란이 되면서다.
민주당 의원들이 국감과 관련 없는 정치적 행위라고 반발하며 고성이 오갔고 이후 정회를 거쳐 낮 12시가 가까워서야 가까스로 업무보고와 본질의가 이어졌다.
교육위원회의 교육부 유관기관 국정감사는 파행은 피했지만 초반부터 여야의 신경전이 거칠었다. 국민의힘이 대장동 특검 수용을 촉구하는 마스크와 리본을 착용하자 민주당이 항의하면서다.
여당 간사인 박찬대 민주당 의원은 “신성한 국감을 조롱하는 것이 아닌가. 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충분히 협의했음에도 매번 국감을 이렇게 진행할 것인지에 대해 강력히 유감을 표한다”고 한 반면 야당 간사인 정경희 국민의힘 의원은 “여야 간사 간 합의한 것은 피켓에 관한 것이었다. 마스크나 리본 착용은 문제될 일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대장동 피켓과는 다른 일로 파행을 겪은 국감장도 있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통위 국정감사는 야당 간사인 박성중 의원 등 국민의힘 측에서 방통위 측의 업무보고가 길다고 불만을 표하는 과정에서 민주당 소속인 이원욱 과방위원장과 고성이 오갔다.
국민의힘 측이 방통위의 업무보고를 생략해줄 것을 계속해서 요구하자 이 위원장은 “야당 간사가 버르장머리 없게 이게 뭐하는 꼴이냐”며 “위원장이 지금 잘 진행하고 들어주니까 버르장머리가 있어야지”라고 버럭해 장내 소란이 일었다.
이 위원장은 30분 만에 과방위 국감을 정회했다가 속개하면서 “국감이 파행에 이른 데 국민 여러분께 사과의 말씀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무위원회의 공정위 국감에서는 여야가 각각 고발사주와 대장동 의혹을 겨냥해 윤 전 총장과 이 지사를 겨냥한 증인채택을 요구하며 기싸움을 벌였다.
야당 간사인 김희곤 국민의힘 의원은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이 구속됐고 대장동 게이트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꼬리가 잡혔다”면서 “이 지사는 오는 10일 민주당 대선 후보로 최종 확정될 경우 지사직을 사퇴할 가능성이 큰데 정무위에 이 지사를 증인으로 출석하게 해달라”고 말했다.
그러자 여당 간사인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그렇다면) 곽 의원 아들과 박영수 특검, 이경재 변호사 등은 왜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느냐”며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 관련자 3명이 최근 소환됐고 윤 전 총장 부인 김건희 씨가 10억원을 대줬다는 언론 보도가 있다. (김건희 씨의 경우에도) 왜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느냐”고 반박했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