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구상나무 숲 39% 이상 소실… 국립산림과학원, 나이테-기상 분석 태풍과 기후변화를 원인으로 지목… “온난화로 생장 시기에 수분 부족” 일각선 ‘수분과다’ 원인으로 꼽기도… “정확한 분석 위해 정보교류 필요”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 왕관릉에서 정상을 향해 가는 길목의 구상나무 숲에 하얗게 변한 고사목이 무더기로 보인다(아래쪽 사진). 국립산림과학원은 한라산 구상나무 숲의 쇠퇴 원인으로 태풍에 의한 강한 바람과 수분 부족 등을 제시했지만 수분 과다로 구상나무가 말라죽는다는 분석도 있는 등 원인이 명쾌하게 정리되지 않고 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게 대규모 숲을 형성하고 있는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 원인이 태풍에 의한 강한 바람과 숲의 연령 구조에 있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반면에 강풍보다는 토양 수분 과다 때문이라는 주장도 있어 구상나무 고사 원인을 둘러싼 논란이 일고 있다.
3일 오전 한라산 관음사 탐방로를 따라 정상을 향하는 길목인 해발 1650m 왕관릉에 올라서자 구상나무 숲이 시원스레 펼쳐졌다. 구상나무에서 소나무와는 다른 독특한 향이 뿜어져 나왔다. 왕관릉에서 백록담 정상에 이르는 구간은 온통 구상나무 숲인데 정상으로 향할수록 하얗게 변한 구상나무 고사목 개체 수가 많아졌다. 구상나무는 1920년대 처음 학계에 보고됐으며 유럽으로 건너간 후 개량을 거듭해 수려한 크리스마스트리로 재탄생한 나무로 유명하다.
산림청 국립산림과학원은 최근 한라산 구상나무의 고사 이유와 숲의 쇠퇴 원인을 연륜연대학 중심으로 분석한 결과 잦은 태풍에 의한 강한 바람과 기후변화, 숲의 연령 구조에 있다고 밝혔다. 연륜연대학은 나무의 나이테를 통해 과거는 물론 현재 진행되고 있는 기후 및 자연환경의 변화를 밝혀내는 학문이다.
이 분석 자료를 지난 32년간의 기상 자료와 비교한 결과 태풍의 강한 바람과 기후변화로 인한 봄철 온도 상승, 그리고 구상나무의 비교적 낮은 한계수명이 구상나무 숲의 감소 원인으로 제시했다. 또 2012년 볼라벤 등 잇따른 태풍이 구상나무 고사에 큰 영향을 준 것으로 해석했다. 이번에 조사된 나무 중 가장 오래된 생육목은 114년, 고사목은 131년으로, 구상나무의 생물학적 한계수명은 150년 이하로 나타났다.
국립산림과학원 측은 최근 기후변화로 인한 온도 상승이 나무가 생장을 시작하는 봄철 건조한 환경을 조성하면서 구상나무의 63%가량이 봄과 여름 사이에 고사했다고 밝혔다. 수분 부족이 구상나무 고사 및 숲 쇠퇴에 영향을 준다는 기존 결과를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해석과 전혀 다른 주장도 있다. 수분 부족이 아니라 오히려 수분 과다에 의해 구상나무 고사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제주도 세계유산본부 안웅산 박사 등은 2019년 한국농림기상학회지, 국제학술지인 포레스트 등에 게재한 논문에서 구상나무 누적 고사율, 입지 환경, 밀도 등을 종합 분석한 결과 많은 강우량의 지속과 그에 따른 토양 수분 과다가 직접적인 원인인 것으로 해석했다.
안 박사는 “구상나무 고사 원인으로 건조한 동절기 기후로 인한 수분 스트레스 증가 또는 수분수지 불균형, 집중 강우에 의한 토양 유실, 겨울철 폭설을 비롯한 복합적 작용 등 대부분 기후변화에 의한 다양한 요인이 제시됐지만 한라산 전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구상나무 쇠퇴 현상에 대해 일관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며 “입장을 달리하는 연구진 간의 진솔한 토론과 정보 교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재영 기자 jy788@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