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8> 아이가 스트레스 받을 때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
8세 여자아이가 엄마 때문에 스트레스가 너무 많단다. 엄마가 “옷 빨리 갈아입어”라고 해서 갈아입으려고 생각하고 있는데, 말한 지 5초 만에 “너 빨리 갈아입으라고 했잖아! 왜 안 갈아입어?”라고 한단다. 매사 그렇다고 했다. 시켜놓고 하려고 하면 왜 아직 안 했냐고 혼낸단다. 한 번은 “왜 하려는데 혼내기만 해”라고 물어보니, 엄마는 “네가 만날 잘 안 하니까 그렇지”라고 했다. 아이는 굉장히 억울했다. 자기는 느릴 뿐이지, 한 번도 엄마 말을 듣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엄마는 자신을 말 안 듣는 아이 취급했다.
아이들이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은 억울할 때다. 어른들도 마찬가지다. 겁이 많은 어린아이가 너무 무서워서 자기도 모르게 아빠를 쳤는데, 아빠가 “너 왜 이렇게 폭력적이야!”라고 하면 아이는 억울해서 스트레스가 생긴다. 또래들과 어울리며 결을 맞춰 조금 꾸몄을 뿐인데 부모가 “발랑 까졌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더니…” 하면서 날라리 취급하면 억울하다. 복도를 지나다가 실수로 어깨를 좀 쳤을 뿐인데 친구가 “왜 때려? 싸우자는 거야?”라고 오해하면 속상하다. 담임교사의 훈시 끝에 습관적으로 “아이 씨”라는 말이 튀어나왔는데 담임교사가 “어디서 선생님한테 욕지거리야” 하면, 너무 억울하다.
특히 아이들은 공부랑 관련해 억울한 게 많다. 공부를 정말 열심히 했다. 그렇다고 성적이 꼭 잘 나오지는 않는다. 이때 교사나 부모가 “너 공부를 이렇게 안 해서 어쩌니?”라고 말하면 억울하다. 잘하고 싶어서 열심히 했는데, 성적이 안 나왔으니 가장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아이’다. 그런데 필요한 도움은 못 줄망정 오해까지 하니 억울함은 배가된다. 이럴 때는 “정말 열심히 하던데 원하는 결과가 나오지 않아서 속상하겠다. 우리 함께 이유를 좀 찾아볼까? 이왕이면 네가 한 만큼 결과가 나오는 것이 좋지 않겠니?”라고 해서 아이의 스트레스를 줄여주어야 한다.
아이들이 억울해하는 상황을 보면 부모가 과거 잘못으로 낙인을 찍어서 말하거나 지레짐작한 것에 대한 게 많다. 그 순간 그대로 아이를 봐주지 않는 것이다. 아이의 억울함이 덜하려면 부모는 늘 사건 하나하나를 독립된 사안으로 다뤄줘야 한다. 옛날에도 늘 그래왔다고 계속 그러리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가끔 아닐 때도 있다.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는데 부모가 늘 그랬다고 하면서 야단치면 부모에 대한 신뢰가 뚝 떨어진다. 요즘 아이들의 또래 문화도 이해하고 인정해줘야 한다.
조금 더 어린 아이들은 정서적으로 안전하다고 느끼지 못할 때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자신의 안정감을 깨는 일에 불안해한다. 부모가 잘 돌봐 주지 않거나 싸움을 자주하거나 새롭고 낯선 경험을 갑자기 하면 스트레스를 받는다. 새로운 성장발달과제를 해야 할 때도 안정감 있던 전 단계가 깨진다. 부모가 사사건건 지적하는 상황에서도 정서적인 안정감이 깨진다. 예를 들어, 앉으면 “똑바로 앉아야지” 하고, 똑바로 앉으면 “허리 펴야지” 하고, 일어나면 “다시 앉아” 한다. 먹으면 “흘리지 말고 골고루 먹어라” 하고, 안 먹으면 “왜 안 먹느냐?” 하고, 많이 먹으면 “왜 이렇게 많이 먹어”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사람은 스트레스를 전혀 받지 않고 살 수 없다. 하지만 너무 많은 스트레스는 아이가 정서적으로 건강하게 성장하는 것을 방해한다. 지나친 스트레스를 주지 않으려면 아이의 반응에 민감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아무리 어려도 이 말을 했을 때 아이의 기분이 어떨지 배려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이를 오냐오냐 키우라는 것은 절대 아니다. 아이를 잠깐 맡아서 키워주는 귀한 집 도련님이라고 생각하면 어떨까. 그렇게 하면 사사건건 쉽게 명령조로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오은영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소아청소년클리닉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