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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의 떡’ 난임휴가, 오전에 시술받고 출근

입력 | 2021-10-06 03:00:00

연3일 이내 난임치료 위한 휴가
상사 눈총에 직장인 잘 못 써
고용부, 실태 파악조차 못해
시술비 지원 깐깐… 5분의 1만 혜택




시험관 시술로 임신을 준비 중인 직장인 홍모 씨(34)는 올 8월 수정란을 이식받는 날에 맞춰 회사에 난임치료휴가(난임휴가)를 신청했다. 앞서 한 차례 시술이 실패한 탓에 이번에는 이식 후 충분히 안정하면서 임신에 성공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휴가 이틀 전 상사는 홍 씨에게 일이 많으니 휴가를 가지 말라고 통보했다. 홍 씨는 “어쩔 수 없이 당일 오전 시술을 받고 오후에 바로 출근했다”며 “안정은커녕 스트레스만 늘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2차 시술에도 실패해 3차를 준비 중이다.

5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근로자는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등 난임치료를 위해 필요한 경우 연간 3일 이내 휴가를 쓸 수 있다. 첫 1일은 유급이고 나머지 2일은 무급이다. 난자 채취 및 수정란 이식 등 시험관 아기 시술 준비와 회복에 필요한 기간을 고려한 것이다. 난임휴가 제도는 2018년부터 시행됐다.

하지만 난임휴가 사용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호소하는 직장인이 많다. 난임휴가 급여를 전액 사업주가 부담하는 제도 탓이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배모 씨(30)는 “수면마취가 필요한 시술을 받아야 해 난임휴가를 쓰겠다고 했더니 ‘회사 사정은 생각 안 하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며 “결국 반차를 쓰고 병원에 가야 했다”고 말했다.

앞서 문재인 대통령은 8월 난임부부 지원을 확대해달라는 국민청원에 대해 “우리 정부 들어 실시하고 있는 난임휴가가 현장에 잘 안착되도록 하겠다”고 언급했다. 그러나 고용부는 난임휴가를 사용한 근로자의 수조차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육아휴직의 경우 정부에 급여를 신청하는 과정에서 사용인원이 통계에 잡히지만, 난임휴가는 급여를 사업주가 부담해 별도 신고나 신청 절차가 없어 통계 파악이 안 된다”고 설명했다.

난임 지원비 기준도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임신을 준비 중인 직장인 김모 씨(32)는 난임 정기검진과 시술 등을 위해 5월부터 9월까지 11일의 연차와 1일의 난임휴가를 사용했다. 그동안 병원비는 500만 원 가까이 들었다. 김 씨는 “한 달에 3, 4차례 병원을 다녀야 하지만 3일의 난임휴가는 턱없이 부족하고 지원금도 없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시험관 시술이 계속 실패하면 비용이 계속 불어나 몇 달 치 월급을 모아야 할 정도”라고 설명했다. 회당 최대 110만 원까지 지급되는 난임 시술비 지원은 부부 합산 월소득이 약 556만 원을 넘지 않는 경우에만 받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수진 의원(비례)이 보건복지부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로부터 난임 시술비 지원을 받은 인원은 올 9월까지 3만4096명이다. 지난해에는 총 4만5686명이 지원을 받았다. 매년 20만 명 이상이 난임 진단을 받는 걸 감안하면 5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아이 수)은 역대 최저(0.84명)였다. 심각한 저출산 문제를 조금이나마 해소하기 위해선 난임 지원을 획기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의원은 “신생아 10명 중 1명이 난임시술로 태어나고 있는 만큼 고용부 등 관계부처가 아이를 낳기 위해 노력하는 부부에 대한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송혜미 기자 1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