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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횡설수설/장택동]붙잡힌 ‘김미영 팀장’

입력 | 2021-10-08 03:00:00


‘김미영 팀장’에게서 “최저 이율로 30분 내에 3000만 원 대출 가능” 식의 문자메시지를 한 번쯤 안 받아본 사람은 드물 것이다. 개그 코너의 소재가 될 만큼 널리 알려진 김미영 팀장은 보이스피싱의 상징이 됐고, 진짜 김미영 팀장들은 본인 이름으로 보낸 이메일이나 문자메시지가 스팸 처리되는 등 곤욕을 치렀다. 그 김미영 팀장을 만들어낸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이 붙잡혔다. 사이버수사를 담당하던 경찰관 출신이었다.

▷4일 필리핀에서 검거된 박모 씨(50)는 2008년 수뢰 혐의로 경찰에서 해임됐다. 그는 경찰 재직 중 보이스피싱 수사를 하며 알게 된 노하우를 악용해 보이스피싱 조직을 만들었다. 박 씨가 피해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문자메시지를 대량으로 보내면서 만들어낸 가상의 인물이 바로 김미영 팀장이다. 박 씨의 조직은 필리핀, 중국, 베트남에 콜센터를 두고 조직원 수가 100여 명에 달하는 기업형 범죄조직으로 성장했다.

▷보이스피싱 초기였던 2010년대 초반에는 어눌한 발음의 중국동포들을 이용하는 게 일반적이었지만 박 씨는 내국인으로만 조직을 운영했다. 메시지를 보고 전화를 건 사람들은 철저하게 준비된 보이스피싱범들에게 속절없이 속아 넘어갔다. 경찰의 수사로 국내 조직이 와해된 2013년까지 박 씨 일당이 뜯어낸 돈은 약 40억 원으로 조사됐지만 이들의 통장 입출금 내역 등을 종합할 때 전체 규모는 400억 원대로 추정된다.

▷보이스피싱은 나날이 진화하고 있다. 김미영 팀장이 너무 많이 알려진 뒤에는 ‘김민수 검사’나 ‘금감원 이동수 과장’ 등의 이름으로 국가기관을 사칭하며 피해자들을 속이고 돈을 빼냈다. 요즘엔 SNS 메신저를 이용해 가족이나 친구인 것처럼 속이는 메신저피싱이 부쩍 늘고 있다. ‘내 휴대전화가 고장났다’며 원격조종 앱을 설치하게 한 뒤 신분증과 계좌번호 등을 빼내는 게 대표적 수법인데 주로 고령층을 노린다. 올 상반기 메신저피싱의 연령별 범죄 피해액을 보면 50대 이상의 비중이 약 94%에 이른다.

▷보이스피싱에 대한 경계심이 높아졌지만 치밀한 계획과 심리전으로 무장한 보이스피싱범들을 맞닥뜨리면 벗어나기가 쉽지 않다. 올해 상반기 보이스피싱 범죄 규모는 845억 원에 달한다. 보이스피싱 피해를 줄이는 길은 미리 공부하고 의심하는 것이다. 미국 국립사법연구소 연구 결과 비슷한 유형의 사기범죄에 대해 들어봤고, 사기범이 접근해올 때 신원을 알아보려고 한 사람은 범죄를 피할 가능성이 높았다. 저금리 대출 광고 메시지를 보고 연락하지 말 것, 지인 이름으로 수상한 문자메시지가 오면 전화를 걸어 신원을 확인할 것 등 예방수칙을 눈여겨보고 실천해야 보이스피싱의 덫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


장택동 논설위원 will7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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