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권기령 기자 beanoil@donga.com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
내일은 한글날이다. 약 600년 전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조하실 때 나 같은 영국 사람을 염두에 두진 않으셨겠지만 한국어가 세계화되는 지금의 현상을 보셨으면 어떤 반응을 보이셨을지 궁금하다. 오늘은 칼럼의 내용과 함께 단어들에도 주목하여 주시길 바란다.
작년 초부터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 두기 의무화로 독자들께서도 집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았을 것이다. 밖에서 다양한 모임과 야외 운동을 즐기던 필자도 집에서 TV를 보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지난해 높은 시청률을 기록한 ‘부부의 세계’를 열심히 보았다. 원작인 영국 드라마 ‘닥터포스터’를 이미 시청한 후였고 내용이 조금 수위가 높아 어떻게 리메이크할지 궁금했는데, 충격적인 장면들이 원작 그대로 나와서 보는 내내 감탄을 연발했다.
운이 좋아서 여주인공 김희애 씨를 직접 만나볼 기회가 있었는데 내 한국어를 칭찬하시면서 영국 원작과 비교해서 어떻게 감상했냐고 물어보길래 지체 없이 “대박”이었다고 답했던 기억이 난다. 드라마가 유명하고 내가 영국 출신이라 유튜브 채널 리액션 영상 콘텐츠에 출연했을 정도다. 영국 ‘닥터포스터’가 드라마 덕분에 한국에 알려지게 되었으니 양국 사이 문화침투(Cultural Invasion)가 역방향으로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까. 문화 콘텐츠를 통한 “한류”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만화”도 그렇다. 요즘 해외에서 한국 만화의 인기가 높아지며 일본 망가의 인기를 제칠 기세다. 조만간 “트로트”까지 세계화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한국에 사는 내 영국 절친의 트로트 애착은 보통 이상인데, 자신이 이 음악 장르를 반드시 세계시장에 내놓을 것이라는 큰 포부를 갖고 있다.
마지막으로 “K드라마”를 빼놓을 수 없다. 최근 몇 주간 모든 미디어가 하나의 제목으로 도배되다시피 했다. 바로 오징어게임이다. 전 세계 대부분의 국가에서 오징어게임은 시청률 1위를 차지하고 있다. 한류가 처음 시작될 당시처럼 몇몇 아시아 국가를 중심으로 인기를 끄는 정도가 아니라, 이제 한국 문화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거의 모든 나라에서 새로운 관객을 빨아들이는 단계에 진입했다. 내가 한국에 살고 있는지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영국 친구들도 이젠 나에게 오징어게임을 봤다면서 많은 질문을 퍼붓고 있다.
오징어게임이 바꾼 온라인상 새로운 유행들도 많아졌다. 유명한 장면의 “짤”이나 유행어, 그리고 드라마에서 소개된 게임을 모티브로 한 “먹방”들이 셀 수 없을 정도로 올라오고 있다. 나도 유튜브에서 달고나 먹방을 한 편 찍기도 했으니 말이다. 그뿐만 아니라 온라인 쇼핑을 통해 영화에 나왔던 의류들이 불티나게 팔리고 있다는데, 예상을 덧붙여 보자면 단연코 오징에게임 복장이 올해 핼러윈 파티에서 대세로 등극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을 향한 해외의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지만 코로나로 이를 직접 체험하지 못해서 생기는 욕구불만이 온라인으로 표출되는 현상도 관찰할 수 있다. 한국 유명 아이돌과 관련한 콘텐츠를 누군가 올리면 그 아래 영문으로 “oppa(오빠)” 또는 “unni(언니)”로 시작하는 댓글을 쉽게 볼 수 있고,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 유튜브 영상에서는 한국 특유의 “애교” 섞인 말투, 귀여운 몸짓의 한국적 “스킨십” 또한 흔히 볼 수 있다.
폴 카버 영국 출신·유튜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