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하는 마음/전주홍 지음/256쪽·1만4800원·바다출판사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헤이르스홉의 ‘화재가 난 연금술사의 실험’. 실험실은 일반인들의 상상처럼 정돈된 공간이 아니다. 오히려 실험 과정에서 화재나 독성물질이 발생할 수 있는 위험하고도 어수선한 곳이다. 바다출판사 제공
노벨상 수상자 발표가 4일부터 이어지고 있다. 최근 노벨 과학상은 단독 연구자가 아닌 연구팀의 공동 연구 성과에 주로 돌아가고 있다. 2001년 이후 3개 노벨 과학상 수상자 162명 중 단독 연구자는 5명(약 3.1%)에 불과하다. 갈수록 연구 분야가 고도화되고 복잡해지면서 여러 과학자들이 팀을 이뤄 연구하는 ‘빅 사이언스’가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의대 생리학교실 교수인 저자는 변화하는 과학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해선 과학의 실상부터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특히 과학자의 관점에서 여러 사람들이 함께 연구를 펼치는 실험실이 어떤 곳이고 그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과학의 세계를 소개한다. 과학 연구가 어떻게 이뤄지는지를 시민들도 알아야 그 성과를 사회적으로 공유할 수 있다는 것.
대부분의 과학지식은 실험실에서 생산된다. 실험실이라고 하면 대중은 장비와 기자재, 시약 등이 가지런히 정리돼 있는 이미지만 막연하게 상상할 뿐이다. 저자는 실험실은 일반인들의 상상보다 훨씬 어수선하고 뒤죽박죽인 곳이라고 말한다. 특히 공동 연구가 이뤄지는 실험실은 고가의 장비를 경쟁적으로 사용하면서 갈등의 장이 되기 일쑤다. 장비 사용 순서를 두고 다투고, 자신의 실험 결과가 유효하다는 논쟁을 벌이기도 한다. 이에 따라 다른 연구자와의 원만한 인간관계는 연구 성과에 작지 않은 영향을 주는 요소라는 게 저자의 견해다.
꼼꼼하게 세운 가설이 실험의 성공을 보장하는 것도 아니다. 실험실은 자연현상을 인위적으로 유도하고 변수를 통제할 수 있는 환경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히려 실제 세계에서 벌어지는 현상과 실험 결과 사이의 차이를 낳는다. 자연과는 다른 인위적 조건에서 실험이 수행되기 때문이다. 특히 한 실험실에서 이뤄진 연구 결과가 다른 실험실에서는 제대로 검증되지 않는 이른바 ‘재현성의 위기’도 과학계에선 종종 발생한다.
실험 결과를 논문으로 담아내기도 쉽지 않다. 과학논문은 서론, 연구 방법, 연구 결과, 고찰이라는 구조화된 형식을 갖춰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연구는 논문 형식대로 이뤄지지 않는다. 과학자는 연구 과정을 논문 구조에 맞춰 재구성해야 한다. 논문에 연구 결과를 제대로 담아냈다고 해도 연구자가 유명하지 않거나 시대를 너무 앞서가면 묻힐 수 있다. 예컨대 국제학술지 네이처는 핸스 크레브스와 피터 랫클리프의 연구논문 게재를 거부했다. 하지만 이들은 해당 논문으로 각각 1953년과 2019년에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크레브스는 무명의 연구자라 다른 학술지에 논문 투고를 제안받았다. 랫클리프는 논문 심사자 중 일부가 연구 가치를 알아보지 못해 네이처에 논문을 게재하지 못했다.
과학자의 성과는 오직 논문으로 평가된다. 논문이 완성되기까지 과학자들은 실험실에서 서로 소통하며 분투한다. 그래서 저자는 과학이 성장의 이야기라고 말한다. 논문 공동저자 등재를 ‘지인 찬스’로 활용하는 일부 과학자들의 행태가 공분을 일으키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