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20세기 저녁과 작은 전환점들/가즈오 이시구로 지음·김남주 옮김/80쪽·6800원·민음사
7일 올해 노벨 문학상 수상자가 선정됐다. 특별히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는 한 수상자는 스웨덴 스톡홀름 아카데미 강당에서 노벨상 수상 소감 연설 겸 강연을 하는 것이 전통이다. 수상자가 자신의 인생과 작품 세계에 대해 솔직하게 털어놓는 자리다.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문학 애호가들의 눈길이 쏠린다.
이 책은 2017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가즈오 이시구로(67)의 수상 소감 연설을 번역한 책이다. 일본계 영국 작가인 그의 성장 배경, 글을 쓰기로 결심한 후 삶의 경로 등 그의 문학적 바탕을 엿볼 수 있는 단서들이 담겨 있다. “위대한 정서적 힘을 지닌 소설들을 통해 세계가 우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환상에 불과한 의식의 심연을 밝혀내 왔다”는 스웨덴 한림원의 평가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이기도 하다.
이 연설집을 읽으며 느꼈던 건 승승장구했다고 보였던 그가 실상 꽤 불안한 삶을 살았다는 사실이다. 젊은 시절 그는 항상 가난했다. 그는 1979년 영국 동부 지역에 위치한 이스트앵글리아대의 문예창작학 석사 과정에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문학에 투신하기 시작했다. 그는 경제적 이유 때문에 대학에서 16km 떨어져 있던 작은 방에 세 들어 살았다. 하루 2차례만 운행하는 버스를 타고 학교를 다녔다. 방은 난방이 되지 않아 매일 살이 에일 듯한 차가운 공기가 새어 들어왔다. 추운 밤에 작은 탁자 앞에 앉아 글을 쓰는 삶이 이어졌지만 그는 행복했다. 그에겐 문학적 야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 만난 한 출판평론가에게 “요즘 젊은 한국 작가들은 상금이 큰 문학상을 받기 위해 작품을 쓰는 경향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이슈가 되는 소재를 선택해 빠르게 작품을 써내거나 자신은 정작 관심이 없음에도 일부러 사회적 의미가 담긴 작품을 펴내는 일부 작가들을 겨냥한 지적이다. 물론 살아남기 위해 어떤 글이든 쓰는 작가들의 행동을 비난할 순 없다. 하지만 자신만의 문학 세계를 펼치려는 야망이 있는 작가들이 점점 사라지는 현상은 슬픈 일이다. 한국 작가의 노벨 문학상 수상을 기대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문학에 순수하게 투신하려는 작가를 키우는 일 아닐까.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