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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과 내일/길진균]마귀와 마수가 난무하는 대선 경선

입력 | 2021-10-09 03:00:00

언제까지 혐오에 기대 표 모을 건가
유권자 부끄럽게 하는 리더 없어야



길진균 정치부장


“찍고 싶은 후보가 없다” “이런 대선은 처음이다”. 요즘 이런 푸념을 자주 듣는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불안을 느끼는 더불어민주당 지지자들이 있다. 국민의힘 지지자들 중에서도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바라보며 고개를 갸웃하는 인사들이 있다. 확신을 갖기엔 어딘가 불안하다는 얘기다. 여기에 이 지사를 둘러싼 대장동 개발 의혹과 윤 전 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주술 논란은 지지자들의 불편한 마음에 기름을 부었다.

그렇지만 여론조사 추이를 살펴보면 두 후보 지지율은 흔들림이 없다. 이들은 각각 여야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2위와 격차가 있는 1위를 몇 달째 유지하고 있다.(한국갤럽 기준)

왜 이럴까? ‘기본소득’(이 지사)이나 ‘공정과 상식’(윤 전 총장)이 시대정신과 부합해서? 그것보다는 반대편에서 이유를 찾는 것이 쉬울 듯하다. 한쪽 진영을 지지하는 이들에겐 ‘우리 후보’에게 느끼는 불안보다 ‘저쪽 후보’에 대한 혐오와 두려움이 더 크게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수차례 대선을 치른 여의도의 한 선거전문가는 “‘좋은 후보 도와주자’보다 ‘나쁜 후보를 막아야 한다’고 해야 지지자들이 더 잘 뭉친다”고 했다.

각 후보 캠프가 이를 모를 리 없다. 이 지사도 윤 전 총장도 각종 의혹을 돌파하는 핵심 전략은 강경 발언이다. 이 지사는 “국민의힘이 지금은 마귀의 힘으로 잠시 큰소리치지만, 곧 부패지옥을 맛볼 것”이라고 비난하고, 윤 전 총장은 “민주당 정권이 우리 당 경선에까지 마수를 뻗치고 있다”고 외친다.

갈등과 증오의 수위가 올라갈수록, 상대를 대번에 제압할 것 같은 강력한 결기를 보여줄수록 지지층 사이에서 입지가 강화된다. 특히 충성도가 높은 당원과 열성 지지자들에겐 ‘정권 재창출’ 또는 ‘정권 교체’의 염원을 이뤄낼 수 있는 대표선수가 절실할 뿐이다. 추문은 감수해야 할 작은 기회비용에 불과하다. 이런 몰가치적 투쟁에선 도덕이나 정의 같은 정치철학이나 공약 등 미래 비전은 의미를 갖기 어렵다.

어디까지나 당내 경선까지만 통하는 전술이다. 경선은 당원과 열성 지지자를 누가 더 많이 확보하느냐의 싸움이지만 본선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각각 30% 안팎을 차지하는 여야의 지지층 지형 속에서 20∼30%가량의 무당층·중도층이 승패의 무게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경선 때는 지지층을 겨냥해 이념적 성향을 강조하고, 중도층 표를 얻어야 하는 본선에선 점차 중앙으로 옮기고, 대선 이후에는 통합을 내거는 것이 대선의 ABC다. 그러나 이번 대선은 여야 후보들을 둘러싼 의혹에 대한 검찰 수사 등으로 본선도 A∼Z까지 네거티브로 넘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여야 캠프 관계자들은 “경선에선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당의 후보로 선출된 이후 본선에서는 바뀔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정말 본선에서는 ‘마귀’ ‘마수’ 같은 적대적 표현이 사라질까. 중요한 것은 말이든 행동이든 유권자를 부끄럽게 만드는 지도자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최순실 사태가 가르쳐 준 교훈 중 하나도 그것이다. 2016년 미국 대선 당시 미셸 오바마 여사는 “그들이 저급하게 행동해도 우리는 품위 있게 행동한다(When they go low, we go high)”라는 말로 미국 국민을 환호하게 했다. 우리 대선에서 이런 연설을 떠올리는 것 자체가 과한 기대일까.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