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화가 앙리 마티스는 수 년 전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대중적 작가는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최근 마티스 포스터가 한국의 밀레니얼 세대에게 인테리어용으로 사랑 받기 시작하고, 조금씩 대중에게도 친숙해지고 있는 듯합니다. 생각해보니 저의 생애 첫 소장품도 마티스의 1953년 테이트 갤러리 전시 포스터였네요.
그런데 마티스 그림의 진수는 선뿐만 아니라 거침없는 색채와 구도에서도 드러난다는 것, 알고 계셨나요?
간단하게 만들어진 포스터로는 마티스의 과감함을 즐기기가 어려운데요. 오늘 그래서 마티스가 1911년 그린 ‘화가의 가족’을 가져와봤습니다. 먼저 그림을 볼까요.
●마티스가 그린 가족 초상화
이 그림, 마치 체스 게임을 하듯이 형태와 색채의 균형을 고도로 계산해 긴장감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그림 속에 한 수를 놓고, 맥락에 맞춰 다음 수를 놓으면서 수학 문제를 풀듯 마티스는 자기만의 게임을 하고 있는데요. 이해를 돕기 위해 우선 그림 속의 인물이 누군지 알아보겠습니다.
마티스의 가족은 아내 아멜리와 두 아들 피에르와 장, 그리고 딸 마르게리트가 있었습니다. 이 그림 속에는 마티스를 제외한 가족 구성원이 묘사되어 있어요. 가운데 체스를 두고 있는 빨간 옷을 입은 두 남자가 피에르와 장 형제겠지요. 그림의 왼쪽에 앉은 여성이 아내 아멜리, 그리고 오른쪽에 서 있는 여자가 딸 마르게리트입니다.
사람들이 마치 그림에 파묻히듯 복잡한 패턴과 무늬가 인상적이죠. 여기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누구인가요? 한없이 밝은 색채 속에 시커먼 옷을 입은 오른쪽 여성이 저는 묵직하게 다가옵니다. 마치 위로 떠오르는 캔버스를 붙잡듯이 무거운 색채가 그림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는 모습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여성이 마티스의 아내라고 처음엔 생각했습니다. 아무래도 집 안의 중심은 엄마가 아닐까, 라는 추측 때문이었죠. 그런데 정작 마티스의 아내 아멜리는 왼쪽 구석 소파에 앉아 있네요. 딸 마르게리트가 마티스에게 어떤 존재였길래 캔버스에서 이렇게 등장한 것일까요?
●아픈 손가락, 마르게리트
마티스가 그린 딸 마르게리트의 얼굴. 기관 절개술을 받아 목에 생긴 흉터를 검은 스카프로 가리고 있다.
유일한 딸인 마고는 6살이었던 1901년 급성 전염병인 디프테리아를 앓습니다. 이 때 기관 절개술을 받고 튜브에 의지해야만 호흡할 수 있는 삶을 살게 됩니다. 힐러리 스펄링의 마티스 전기에 따르면, 당시 의사가 마티스의 집 다락방에서 급하게 수술을 했고, 아버지는 어린 딸이 움직이지 않도록 붙잡고 있었다고 합니다. 부모로서는 정말 가슴이 찢어지는 경험이었겠지요.
그러나 마고는 고통을 이겨내고 단단하게 자라 아빠의 그림을 이해하는 몇 안 되는 지지자이자, 냉철한 비평가가 됩니다. 홈스쿨 교육을 받으며 예술가 아버지의 삶을 가까이서 지켜봤고, 성인이 되어서는 스튜디오의 복잡한 일을 처리하는 관리자가 되기도 했고요. 그녀가 40대 후반인 1945년에는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가했다 게슈타포에 체포돼 고문도 당하고 생명의 위협도 여러 차례 겪으며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죠.
‘화가의 가족’ 속 마고의 모습
마티스가 이 그림을 그리기 2년 전 마고는 두 번째 수술을 받아야 했습니다. 호흡기가 제대로 자라지 못해 숨을 쉬기 위해서는 새로운 튜브가 필요했죠. 이 때 ‘앙데팡당’전에 작품을 냈던 마티스는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합니다. 당시 친구에게 쓴 편지에서 마티스는 “딸의 수술 후 아무 것도 할 의욕이 없다. 특히 그림은 더더욱 그리기 싫다”고 말합니다.
다행히 마고는 고비를 넘기고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그제서야 마티스도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요. 어린 나이에 자식이 생사를 넘나드는 것을 지켜본 아버지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십 수년간 묵힌 감정을 마티스는 짙은 검은 색의 옷에 풀어 넣은 것만 같습니다.
●마음의 풍경을 풀어 놓은 밸런스 게임
‘화가의 가족’ 속 형제들의 모습
마티스가 비슷한 시기에 그린 ‘붉은 스튜디오’를 보고, 그의 작업실을 찾은 많은 사람들이 어리둥절하며 두리번거렸다고 합니다. 사방이 벌건 스튜디오를 상상했는데, 실제는 전혀 달랐기 때문이죠. 마티스는 그럼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해요.
“빨간 벽을 찾으시나요? 그건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여기서 재밌는 건 두 형제가 두고 있는 체스 게임판입니다. 체스판이 그림 앞으로 쏟아질 것처럼 소실점 원근법이 파괴된 모습이 보이시나요? 한쪽 팔을 괴고 있는 왼쪽 남자의 자세에 따라 체스판도 한 귀퉁이가 비스듬하게 기울어 있죠. 그리고 체스판의 격자 무늬는 바닥의 복잡한 카페트 무늬로 확장되어 리듬을 자아냅니다.
화려한 패턴이 한 화면에 폭탄처럼 쏟아져 자칫하면 지저분해보일 수 있는 그림을 마티스는 절묘하게 정돈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복잡한 문양을 마티스는 스페인에서 본 아라베스크 양식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마티스는 이 그림의 스케치를 스페인 세비야에서 시작해 프랑스의 집에서 완성했어요. 이슬람 문화권인 무어족의 복잡한 기하학 문양이 마티스의 재해석으로 생생한 밸런스 게임으로 탄생한 셈이죠. 두 형제가 하고 있는 체스 게임처럼 말입니다.
●화가의 가족을 그려달라고 주문한 남자
그런데 마티스는 갑자기 왜 가족 초상을 그렸을까요? 더 재밌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그림은 마티스가 자발적으로 그린 것이 아닙니다. 그의 그림을 일찌감치 알아본 러시아의 사업가 겸 컬렉터, 세르게이 슈킨이 마티스에게 “당신의 가족 초상화를 그려달라”고 주문했습니다.
드미트리 멜리코프가 그린 세르게이 슈킨의 1915년 초상화
그런데 슈킨은 왜 자신의 가족도 아닌 마티스 가족의 초상을 의뢰한 걸까요? 직접적인 이유를 찾을 순 없었지만 슈킨과 마티스의 관계를 미루어 짐작해보았습니다. 1910년 슈킨은 마티스의 그림을 받고 쓴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들은 당신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미래는 당신의 것이에요.”
이 말에서 슈킨은 타인의 인정이나 누가 봐도 멋진 그림을 자랑하기 위해서가 아닌, ‘미래’를 보고 마티스의 그림을 소장했음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사람들이 당신을 싫어한다’는 말에서도 보이듯, 당시에는 마티스의 작품을 소장하는 것이 전혀 멋진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 때의 기준으로 말한다면 기본도 갖추지 않은 괴상한 그림을 걸어 놓는 괴짜로 취급받을 만한 일이었죠.
마티스를 비롯한 아방가르드 화가들은 요즘으로 치면 ‘악플러’들의 댓글과도 맞먹을 모욕을 듣거나 루머에도 시달렸답니다. 한 평론가는 인종차별적 욕설을 하거나, 그가 탐욕적이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했습니다. 이를테면, “마티스는 당신을 미치광이로 만든다! 마티스는 술보다 위험하다! 마티스는 전쟁보다 더 큰 피해를 끼친다!”라는 표현도 했다네요. 슈킨이 마티스에게 편지를 보낸 것은 같은 해 그가 이런 ‘비판 폭탄’을 맞고 나서였습니다.
마티스의 가장 유명한 작품인 ‘춤’도 슈킨이 의뢰해 그의 집에 걸린 그림이다.
슈킨도 러시아에서 “아버지의 이상한 취향 때문에 두 아들이 자살했다”는 등 흉흉한 소문에 시달렸답니다. 그럼에도 마티스는 자신을 알아봐주는 소수의 컬렉터, 작가들과 함께 비난을 견디며 묵묵히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일반인에게도 사랑받기까지는 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렸죠. 물론 아직도 마티스가 살던 마을에서는 그를 비난하는 사람이 있고, 마티스가 모델과 부적절한 관계였다는 루머도 여전하다고 합니다. 영국의 전기 작가 힐러리 스펄링의 전기는 마티스의 삶을 처음부터 끝까지 추적해가며 이런 오해를 풀어나갑니다.
힐러리 스펄링의 마티스 전기 ‘Matisse the Master’
●화가의 가족, 컬렉터가 된다는 것
제가 이 글을 쓰게 된 것도 스펄링의 전기를 통해 마티스의 삶을 입체적으로 엿본 덕분입니다. 특히 작가가 추구하는 신념과 가치를 알아봐주고 비난을 함께 견뎌 준 컬렉터, 그리고 ‘화가의 가족’ 그림 속에서 밸런스 게임의 대상이 되었듯 마티스의 주변을 맴돌며 그의 예술 세계를 떠받쳐준 가족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흔히 컬렉터라거나 예술가의 가족이라고 하면 뭔가 근사하고, 낭만적이며 화려한 모습을 상상하잖아요. 그런데 실상은 전혀 다른거죠. 마티스의 아내는 그림이 늘 최우선인 남편을 이해하면서도 오랜 시간 속을 썩였고, 말년엔 마티스와 이혼을 합니다. 그럼에도 끝까지 마티스를 지지해주었지만 그 과정에 얼마나 많은 가슴 앓이와 고생이 있었을지는 한 권의 책에 담긴 내용 이상이겠지요.
그러니 저에게는 ‘화가의 가족’ 속 마티스 가족들의 모습이 마치 작가의 예술 세계를 뒷받침해주며 매순간 간신히 균형을 잡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게 힘들지라도, 이제 그러한 삶은 누구나 처한 생존의 조건이며 이런 고통 속에서 진정한 아름다움이 나올 수 있는 것이겠지요.
특히 마음에 남은 건, 자기만의 눈으로 솔직하게 세상을 보고 자신만의 우주를 창조하는 예술가, 그리고 그 신념으로 통하는 사람들의 관계입니다. 요즘 예술 작품 수집이 유행이라 하고, ‘아트 투자’에 관심이 많아지고 있죠. 작가의 신념과 시대적 가치가 맞아떨어진다면 ‘아트 투자’는 정말 수지가 맞는 일입니다. 그런데 수 년 주기로 바뀌는 유행에 따라 사고 팔리는 그림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그런 가운데 슈킨과 마티스의 이야기가 감동으로 다가온 거죠.
제 주변에선 최근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K작가가 함께 전시했던 J작가의 작품을 소장하며, “J의 작품은 한국 미술사에 남을 만한 것이다. 나는 이 작품을 잘 간직하다 꼭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J작가는 그로테스크한 인체 표현으로 미술계에서도 호불호가 갈리는 작품을 하고 있거든요.
그 말을 전해 들은 J작가의 아내는 ‘미술관에 기증하고 싶다’는 진심어린 말이 정말 고마웠다며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누가 뭐라하든 내가 본 세상과 시대의 가치로 판단하고, 신념으로 서로를 인정해주는 그런 모습에 저도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예술 작품을 소장한다는 건 결국 상대방의 눈과 세계를 갖는, 거대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고요.
마티스와 슈킨, 마티스의 가족, K작가와 J작가. 시공간을 넘나 들며 엿본 사람들의 삶을 보며 곰곰이 생각해봅니다. 그림을 소장한다는 건 무엇인가. 모두가 무시하고 비난하는 가운데에서도 신념과 가치를 공유하는 관계. 나는 그런 신념을 강단 있게 받아들일 준비와 각오가 된 컬렉터일까?…
김민 기자 kimm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