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념일인 ‘부부의 날(5월 21일)’ 발안자인 권재도 목사가 그의 저서 ‘장미를 든 목사’와 장미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 수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권재도 목사(오른쪽)가 지난해 10월 ‘코로나 극복 전국 순회 1인 마라톤’을 하며 포즈를 취했다. 당시 그는 강원 춘천호 약 31km를 달렸다. 권재도 목사 제공.
“중학교 때부터 위장병으로 고생했습니다. 대학 땐 허리 디스크 통증 탓에 공부를 제대로 못했습니다. 늘 스트레스를 받다보니 웃을 날이 별로 없었습니다. 특히 대학 때가 최악이었죠. 성적을 상대 평가로 하다보니 공부를 많이 해야 했습니다. 사실상 도서관에서 살았죠. 그런데 어느 순간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습니다. 3분을 채 앉아 있기 힘들었어요. 돌이켜보니 등받이가 없는 의자에서 하루 종일 공부하다보니 척추에 무리가 간 것입니다. 여러 병원도 찾아 다녔지만 당시 의술론 완치가 어렵다고 했습니다.”
요양도 좀 하고 군대도 갈 겸 휴학을 했다. 군대서 훈련 받고 할 땐 크게 문제가 없었다. 2년 3개월의 군 복무를 마친 뒤 복학해 공부를 시작하자 다시 허리가 아팠다. 1년 휴학을 더 했다. 종교에 귀의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자 좀 편안해졌다. 그래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While there‘s life, there’s hope)는 명언을 떠올렸다.
“죽기야 하겠냐며 부산대 인근 구월산(해발 317m)을 뛰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였죠. 허리가 끊어질 듯 아팠습니다. 처음엔 정상까지 10분의1도 못 뛰었습니다. 그래도 참고 조금씩 더 뛰어 올랐습니다. 보름이 지났을 때 한 번도 쉬지 않고 목표지점까지 뛰어서 오를 수 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허리 통증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했어요. 산을 오르며 허벅지와 등의 근육이 강화됐기 때문이었습니다. 근력의 중요성을 빨리 알았더라면 훨씬 빨리 허리 통증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을 텐데 아쉽습니다.”
권재도 목사가 경기 수원 권선구 세류동의 수원천에서 국군 도수체조를 하고 있다. 그는 군대를 다녀온 뒤 매일 틈나는대로 도수체조를 하며 몸을 깨우고 있다. 수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아침에 일어나 군대에서 배운 도수체조로 몸을 깨웁니다. 도수체조는 하루 몇 차례씩 틈나는 대로 하고 있어요. 간단하지만 쉽게 할 수 있어 하고 나면 몸에 활기가 쏟아요. 논산 신병훈련소에서 배운 도수체조가 제 건강의 기본이 되다니….”
권 목사는 속칭 ‘전문적인 마라토너’는 아니다. 생활 속의 운동을 실천하고 있다. “목회자라 일요일에 열리는 마라톤 대회 출전은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그는 시간이 나면 집과 교회 근처 산과 공원을 달리고 걷는다. 2~3km의 짧은 거리이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는다. 15년 전부터는 팔굽혀펴기를 하루 1500개, 스쾃을 500개씩을 병행했다. “탤런트 차인표 씨가 팔굽혀펴기를 하루 1000개씩 한다고 해서 시작했다”고 했다. 요즘은 각각 300개, 150개를 한다. 아내 유성숙 씨(53)도 약 15년 전부터 운동을 시작했다. 부부는 집 근처인 경기 수원 세류동 버드내노인복지관 스포츠센터에서 함께 운동하고 있다. 권 목사는 달리고 걷고 근육운동하고, 유 씨는 수영을 한다. 지금은 코로나19 탓에 복지관 스포츠센터를 운영하지 않아 함께 걷고 산을 타는 것으로 대신하고 있다.
“운동은 일종의 의식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달리고 걷는 게 아닙니다. 운동을 하면서 삶의 목표를 확고하게 합니다. 어제 한 일, 오늘과 내일 해야 할 일 등 반성과 계획도 합니다. 운동을 하면서 건강하게 성경말씀에 따라 살아야겠다는 삶의 목표가 더 확실해 집니다.”
권재도 목사(왼쪽)가 아내 유성숙 씨와 산책을 하다 포즈를 취했다. 권재도 목사 제공.
1989년 대학을 졸업한 권 목사는 잠깐 다른 사업을 하다 1992년부터 신학을 공부했다. 1995년 경남 창원에서 개척교회를 시작했다. 그해 어린이날 TV를 보다가 “소원이 뭐냐”는 질문을 받은 한 아동시설의 초등학생이 “우리 엄마 아빠와 함께 사는 거요”라고 대답하는 것을 보고 ‘건강한 가정’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그는 가정의 달 5월에 둘(2)이 하나(1)된다는 의미를 담아 5월 21일을 부부의 날로 정했다. 그리고 10년 넘게 국회 등을 쫓아다니며 부부의 날을 국가기념일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부 10계명’과 ‘부부싸움 10계명’ ‘부부폭력 제로 운동 선언문’ ‘부부의 전화’ ‘부부 주말캠프’ 등 반짝이는 아이디어와 이벤트로 부부의 날을 알렸다. 2003년엔 부부의 날을 추진하면서 한 경험을 ‘장미를 든 목사’란 책(동아일보사)으로 엮기도 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로 2007년 부부의 날이 국가기념일로 지정됐다. 권 목사는 백년해로헌장도 만들었고 2001년부터 ‘올해의 백년해로 부부상’도 만들어 결혼 60~70년 된 모범부부들에게 시상도 하고 있다.
“2001년 결혼 85주년 된 이훈요(당시 95세)-김봉금(당시 99세) 부부에게 상을 드린 적이 있습니다. 남편 이훈요님께서 ‘사람이 아니면 인내하지 못하고 인내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니다. 우리 부부는 인내로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현재를 사는 우리 부부들이 잘 새겨들어야 할 대목입니다.”
권재도 목사가 경기 수원 권선구 세류동의 수원천을 달리고 있다. 그는 20대 후반 허리 디스크로 고생했지만 산을 뛰어 오르며 통증 완화를 느낀 뒤 평생 운동을 생활화하고 있다. 수원=이훈구 기자 ufo@donga.com
권 목사는 “나 같은 약골도 운동 덕에 팔팔하게 살 수 있다. 사실상 ‘국민 약골’이었는데 운동을 생활화하면서 이젠 건강 하나는 자신 있게 됐다”고 했다. 그는 “차 트렁크에 운동복과 운동화를 싣고 다닌다. 어딜 가든 운동을 한다. 몇 시간 씩 길게는 하지 못하지만 짬짬이 하는 운동도 효과가 크다”고 강조했다.
“건강(健康)이 부(富)보다 낫다(Heath is better than wealth)는 말이 있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으면 뭐합니까?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습니다. 우리 모두 건강한 100세 인생을 개척합시다.”
양종구 기자 yjong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