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란의 21세기 중국] 중국공산당이 직면한 富와 强 딜레마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신화=뉴시스
문혁 후 “먼저 부자 되라” 슬로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내세운 슬로건 ‘공동부유(共同富裕)’에 따른 규제로 헝다그룹 등 중국 기업이 파산 위기에 처했다. 사진은 헝다그룹 사옥. GETTYIMAGES
1949년 이후 중국 역사에서 부와 강의 반복은 문혁으로 인해 좀 더 극적인 형태로 진행됐다. 개혁·개방의 희극은 문혁이라는 비극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문혁의 극심한 트라우마 속에서 중국 지도부는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를 방기할 정도로 극단적 개혁·개방을 실시했다. 문혁 같은 극심한 혼란과 살육이 없었다면 개혁도 개방도 없었을 것이라고 본다. 그야말로 문혁의 역설이다. 문혁을 직접 겪은 중국의 혁명 원로, 그 모습을 발치에서 보며 자란 2세대 정치가들에게 ‘문혁 트라우마’는 한국인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다. 그 트라우마는 경제뿐 아니라, 정치적 결단의 배경이기도 했다.
“모든 약에는 독이 3할”
마오쩌둥 국가주석 시대의 문화대혁명은 중국 사회에 깊은 트라우마를 남겼다. 사진은 문화대혁명 당시 군중 집회 모습. 동아DB
1950~1960년대 중국공산당원이 따른 슬로건은 “인민에게 봉사하자”였다. 인민을 위해 봉사한다고 자처한 상당수 당 간부가 문혁 와중에 인민에게 구타당하고 살해됐다. 문혁 후 경제발전 시대 슬로건은 “부자가 되는 것이 멋지다”였다. 달리 말하면 “부패해도 부자가 되면 문제없다”는 것. 최근 시진핑 2기 정부는 부정부패 척결을 내세우고 있다. 문혁이 일어나고 50년 넘게 흐른 지금도 중국은 그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중국이 경제 분야에서 거둔 성공은 심각한 빈부격차라는 독을 품은 성공이었다. 중국에는 “모든 약에는 독이 3할”이라는 속담이 있다. 이제 해독을 위한 새로운 약 처방이 없으면 경제성장으로 성취한 건강조차 유지하기 어렵다. 부의 편중을 교정하지 않는 한, 중국은 한 단계 높은 강(强)을 성취하기 어렵다. 부강의 상호 보완이 이뤄져야 사회가 안정된다. 원칙적으로 사회에 축적된 부를 국가가 효율적으로 분배해야 한다. 애초에 사회주의가 바로 그 분배에 주목한 이데올로기였다. 하지만 사회주의적 도덕은 문혁의 충격 이후 더는 중국 사회에서 설득력을 지니지 못한다.
세계로 시선을 돌려도 오늘날 중국이 처한 상황은 녹록지 않다. 중국 같은 권위주의 정치체제에서는 지도자의 의지와 품성이 많은 것을 결정한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역사가 쓰이는 것은 아니다. 좀 더 넓게 보면 다른 강대국과 관계 등 지정학적 요인, 심지어 운(運)도 무시 못 할 변수다. 그런 점에서 마오쩌둥에서부터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 시대를 관통하는 현대 중국의 지정학적 상황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20세기 지정학적 측면에서 소련은 미국과 정면 대결해야 했지만 중국은 그렇지 않았다. 데를루기안 교수의 지적처럼, 미·소 냉전체제 속 소련은 막대한 비용 부담을 떠안았다. 미국과 대립이 극에 달한 1980년대 소련은 동맹국을 통제할 만한 비용을 더는 감당할 수 없었다. 양국 대결의 부수효과로 중국은 지정학적 이득을 얻었다. 미국 소비시장에 의존하는 수출지향적 산업화를 통해 국력을 강화할 수 있었다. 마오쩌둥과 리처드 닉슨의 역사적 화해, 그리고 덩샤오핑의 과감한 개혁 결단의 배경에는 미국과 소련, 중국 3자의 역학관계가 있었다.
뒤바뀐 지정학 상황판
반면 21세기 시진핑 시대에 들어서 지정학의 상황판은 완전히 바뀌었다. G2가 된 중국은 미국의 견제 타깃이 됐다. 19세기 일본, 20세기 중국이 국제 정세의 혜택을 입고 급격히 발전했다. 현재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모든 초점이 중국 견제에 맞춰져 있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 중국을 둘러싼 새로운 도전과 위기는 공산주의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지정학과 역사적 유산, 혹은 우연의 산물이라고 봐야 할 것이다. 국가 통치의 근간인 철의 삼각이 약화되고, 부의 분배가 실종된 ‘사회주의 국가’ 중국. 이제 미국과 양자대결까지 해야 하는 중국의 미래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이 기사는 주간동아 1309호에 실렸습니다]
조경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