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외로우세요?” ‘고독’ 해결에 영국 일본 정부가 나선 이유는 [서영아의 100세 카페]

입력 | 2021-10-09 23:53:00

고독은 고령자만의 것이 아니다
고독, 하루 담배 15개비 피우는 것과 같은 건강 해악
“당신이 외롭다는 걸 인정하는 데서 고독탈출은 시작된다”
일터제공은 사회적 고립방지에도 도움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




장수는 인류에게 축복이지만 생각지 못한 여러 부작용도 가져다줬다. 그 중 하나가 노후에 길게 이어지는 고독의 시간들 아닐까. 물론 고독은 고령자들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가족해체와 정보화가 진행된 현대사회에서 어느 세대건 고독과 고립을 느끼는 경우는 갈수록 늘고 있다. 육체적이건 경제적이건 상대적으로 취약한 사람들이 고립되는 경우가 많다는 점도 특징이다.

2018년 1월 영국 정부는 ‘고독은 국가가 나서서 대처해야 할 사회문제’라며 내각에 고독부(Ministry for Loneliness)를 신설해 세계에 충격을 던졌다. 고독은 주관적인 감정의 영역이자 개인 내면의 문제 아니던가. 여기에 정부가 끼어들 수 있다는 건가. 이같은 질문에 대해 ‘고독은 타자와의 관계성이 결핍된 사회적 고립이며 사회적 대응이 필요한 영역’이라는 주장이 맞섰다.

고독은 개인의 문제인 동시에 사회적 문제다. 그래픽 강동영 기자 kdy184@donga.com



○비명에 숨진 초선의원 유지 받들어
세계 첫 고독부 탄생의 숨은 공로자는 2016년 브렉시트 국민투표를 앞두고 극우주의자의 총격에 사망한 노동당 조 콕스 의원(당시 41세)이다. 2015년 처음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이민자와 노동자가 많은 지역구 가정들을 방문하면서 이들이 안은 사회적 고독 해결을 필생의 과제로 삼았다고 한다. 그 자신도 객지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의 경험과 출산과 육아를 거치면서 고독을 절감한 적이 있었다.

2017년 말, 그를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가 보고서를 냈다. 여기 따르면 영국에서 고독은 고령자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인구 6600만 중 약 900만 명의 성인이 고독을 느끼고 있지만 그 3분의 2는 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했다. 아이를 가진 부모의 24%가 고독을 느끼고 10대 아이들의 62%가 ‘때로’ 고독을 느낀다. 가족을 간병하는 사람 10명 중 8명이 ‘고립돼 있다’고 느끼고 75세 이상은 3명 중 1명, 장애인은 절반이 고독감정을 갖고 있었다. 65세 이상 360만 명이 ‘TV가 유일한 친구’라고 답했다.

보고서는 ‘고독상태가 만성화하면 건강에 해를 끼치고 타인과 커뮤니케이션이 어려워질 정도까지에 이른다. 고독은 하루 담배 15개비를 피우는 것과 같은 해악을 건강에 미친다. 고독으로 인한 결근이나 생산성 저하로 고용주에게는 연간 25억 파운드(약 4조 500억 원), 경제전체에는 320억 파운드(약 51조 8000억원)의 손실을 준다’고 추산했다.

세계 최초의 고독부를 만들어내는데 기여한 조 콕스 의원의 생전모습.



조 콕스 의원의 유지를 받아 설립된 ‘조 콕스 고독문제대책위원회’는 2017년 말 영국의 고독현황에 대한 보고서를 냈다. 영국 정부는 이 보고서가 나온 지 한달 뒤 고독부를 만들었다. 사진은 보고서 표지사진.



○영국인 900만 명이 “늘 고독 느낀다”
영국 정부는 2018년 10월 ‘대(對)고독전략’이란 보고서를 발표하고 고독퇴치 예산으로 2000만 파운드(약 325억 원)을 책정했다. ‘고독’이 실제로 의료비나 경제를 압박할 것을 막는다는 취지다. 런던정경대 2017년 발표에 따르면 ‘고독’이 가져다주는 의료비용은 10년간 1인당 6000파운드(약 970만 원)로 추계됐다. 공공의료가 무료인 영국에서 1차 진료를 담당하는 의사들의 진료 중 20%는 의료가 필요한 게 아니라 고독해서 찾아오는 환자들이라는 보고도 있었다.

영국 정부는 2023년까지 전국 건강의료시스템에 ‘사회적 처방’을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의사가 ‘의료’가 아니라 ‘사회적 처방’이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활동가에게 연락해 상황에 따라 지역활동에 참가하도록 돕거나 케어를 받게 해준다는 것이다.

조사에서 16~24세 젊은이가 가장 빈번하고 강하게 고독을 느낀다는 결과가 나오자 2020년도부터는 초등학교와 중학교 커리큘럼에 고독 학습을 넣기로 했다.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 홈페이지. 갖가지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최근에는 코로나 19상황에 대한 대처법이 주류를 이룬다. 출처 전영 멘즈 쉐드협회 홈페이지.



○고독한 환자에게 의사가 ‘사회적 처방’ 가능하게
영국 정부가 주도하는 ‘고독에 대해 말하자’ 캠페인도 시작됐다. 정부보고서는 ‘고독은 오명(stigma)’이라는 생각이 고독 극복을 어렵게 한다고 지적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고독하다고 인정하면 ‘나약함을 드러내는 것’이라거나 ‘남을 귀찮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고독을 끝내는 캠페인(www.campaigntoendloneliness.org)’ 웹사이트에는 고독 대처법이 실려 있다. 그 첫 걸음은 ‘고독에서 벗어나려면 고독하다고 느끼는 자신을 탓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뒤 ‘자신이 무엇을 바라는가 생각해본다’, 예컨대 친구 혹은 가족이 와줬으면 하는가. 자신을 위한 일을 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는다, 간단한 운동을 한다, 무언가 활동에 종사한다, 지역 소식을 알아본다, 지역 복지서비스 담당자와 상담해본다. 자원봉사 등 가진 기술을 타인과 공유한다 등 구체적인 행동을 권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주도하는 시도로는 연금생활자와 집이 없는 젊은이들이 공동생활을 하는 ‘쉐어드 라이브즈’,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 하는 ‘멘즈 쉐드’, 난민들이 인근 주민들과 교류하는 ‘호스트 네이션’ 등의 서비스가 소개된다. 이런 서비스를 통해 고독한 사람을 사회에 끌고나와 머물 곳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밖에 고독한 고령자에 대해서는 ‘말을 걸어본다’ ‘대신 물건을 사러 간다’ ‘우편물을 보내준다’ ‘자선조직 자원봉사가가 된다’ 등을, 고독한 젊은이에 대해서는 ‘이쪽에서 만날 기회를 만든다’ ‘고독에 대해 말할 장소를 지역에서 찾도록 돕는다’ ‘듣는 역할을 해준다’ ‘바쁜 듯한 사람이 고독할 수도 있음을 의식하며 접촉한다’ 등의 대응을 권한다.

퇴직자와 실업한 남성들이 목공이나 전기제품 수리 등의 작업을 함께 하는 멘즈 쉐드는 2013년 이후 영국에서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멘즈쉐드 협회 홈페이지에 따르면 영국 전역에서 현재 592개소가 운영 중이고 개설을 준비중인 곳이 143개소다. 이용자는 1만 4200명이 넘는다. 출처 전영 멘즈 쉐드협회 홈페이지.



○코로나 이후 자살 증가 일본도 고독부 장관 임명
세계 최고의 고령화율을 가진 일본에서는 일찌감치 고독사 방지를 위한 노력이 대대적으로 이뤄졌다. 수십만에 달한다는 은둔형 외톨이(히키코모리) 문제도 일본사회가 떠안은 숙제가 되고 있다. 여기에 코로나 사태 장기화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마저 늘자 위기의식이 고조됐다. 1월 22일 경찰청이 발표한 2020년 연간 자살자수는 2만 919명으로 11년만에 증가세로 돌아섰다.

2월 일본 정부는 영국을 벤치마킹해 내각관방에 ‘고독·고립대책담당실’을 설치하고 이 업무를 사카모토 데쓰시(坂本哲志) 지방창생 담당상에게 맡겼다. 세계 두 번째 고독담당 장관이다. 6월에는 영국과 일본의 고독담당 장관이 온라인 회담을 갖고 “팬데믹이 고독 문제를 심각화했다”며 “가족과 친구, 이웃 등과의 ‘유대’가 고독을 극복하는 첫걸음이고 양국은 정책으로 이를 강하게 뒷받침할 것”이라고 합의하기도 했다.

일본에서는 고립을 측정하는 지표로 타인과의 대화 빈도, 의지할 사람 유무, 자신이 돕는 상대 유무, 사회활동에 대한 참가상황 등을 사용해왔다. 2017년 국립사회보장인구문제연구소 조사에서는 대화빈도가 ‘2주일에 한번 이하’라고 답한 사람의 15%를 65세 이상 독신남성이 차지했다. 이어 65세 이하 독신남성이 8.4%였다. 현역세대에서도 독신남성, 저소득층일수록 고립에 빠지는 경향이 있었다.

후지모리 가쓰히코(藤森克彦) 일본복지대 교수는 “1인가구가 늘어가는 대도시권에서 고립을 예방하려면 주민이 즐겁게 교류할 수 있는 장소와 계속 일할 수 있는 사회 구축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일은 수입을 얻을 뿐 아니라 일터에서 인간관계가 이뤄져 고립방지에도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4일 출범한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내각에서는 노다 세이코(野田聖子)지방창생상이 고독고립 담당상을 겸직한다. 벌써부터 “코로나 사태로 원치않는 고독이 늘고 있다. 즉각 예방적인 정책이 필요하다”는 요망이 쏟아지고 있다.

일본에서는 코로나 사태로 여성과 청소년 자살이 늘자 내각관방에 ‘고독고립 대책실’을 만들고 지방창생상이 업무를 겸직하게 했다. 현판식 장면



○급속한 고령화 한국, 1인가구 증가로 경고등
영국은 2016년 현재 고령화율 18%, 2040년 25% 정도를 예상하고 있다. 일본은 2020년 기준 28.7%으로 고령화가 더욱 진척돼 있다. 한국은 현재 고령화율은 16.5%지만 진행속도는 세계 최고수준으로 빠르다. 여기에 급격한 가족구조의 변화로 현재 고령자의 3명중 1명인 1인가구 비중은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사회적 고립을 막기 위한 준비가 필요한 이유다.

하버드대에서는 ‘인간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75년간 종단연구(동일한 연구대상을 오랜 기간 계속 추적하면서 관찰하는 연구)를 실시했다. 정신과 교수인 로버트 왈딩거(Robert J. Waldinger) 박사에 따르면 그 답은 지극히 간단했다. ‘친밀하고 좋은 인간관계’다. 고독의 정반대 상태다.

고독을 벗어나 좋은 인간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까. 가장 손쉬운 길은 고독한 이웃이 없는지 주변을 둘러보는 일이 될 듯하다. 인생 100년 시대. 긴 ‘고독’의 시간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