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을 이해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시인의 나라로 가야 한다.” 괴테의 시에 나오는 말이다. 노벨 문학상 수상자 압둘라자크 구르나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동아프리카 인도양에 위치한 잔지바르를 이해해야 하는 이유다.
지금은 탄자니아의 일부지만 잔지바르는 구르나가 태어났을 때만 해도 섬들로 이뤄진 별개의 국가였다. 1964년 그곳에서 혁명이 일어났다. 다수이면서도 소외층인 흑인들은 아랍계 및 아시아계 아프리카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였다. 상상을 초월하는 폭력이었다. 아랍계 무슬림이었던 구르나가 영국으로 간 것은 그래서였다. 열여덟 살 때였다.
자전적인 소설이 아님에도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낙원’에는 그 상처가 아른거린다. 어머니는 아들 유수프를 애지중지한다. 틈만 나면 안고 볼을 꼬집고 몸을 번쩍 들어 입맞춤한다. 아들은 어머니가 열두 살이 된 자기를 아이 취급하는 게 창피하다. 어머니는 그가 발버둥을 치며 놓아달라고 해야 놓아준다. 그게 끝이 아니다. 그녀는 달아나는 그의 엉덩이를 토닥거린다. 그런데 오늘은 다르다. 놓아줄 기미가 없다. 아무 말 없이 꼭 껴안고만 있다. 아들도 이상했는지 어머니 품에 그냥 안겨 있다. 어머니가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아버지가 무슬림 상인한테 그를 판 것이다. 빚 때문에.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