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백예린 ‘안티프리즈(Antifreeze)’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
조성모의 ‘클래식(Classic)’은 상업적으로 가장 성공한 리메이크 음반이다. 160만 장 넘게 팔리며 리메이크 음반 가운데 가장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고, 이영애와 김석훈, 손지창 등이 출연해 일본 삿포로에서 촬영한 뮤직비디오도 화제가 되었다. 조성모의 전성기를 더 빛나게 해주었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원곡에 대한 존중 없이 회사의 철저한 기획 아래 상업적으로만 이용했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뮤직비디오로 제작된 시인과 촌장의 ‘가시나무’가 대표적이다. ‘가시나무’는 원작자인 하덕규가 종교적인 성격을 가지고 만든 숭고한 노래였지만 조성모(와 기획사)는 이를 남녀 간 사랑 노래로 변질시켰다. 하덕규도 “조성모도 크리스천이라고 해서 곡을 주었다”며 “뮤직비디오가 그렇게 만들어질 줄 정말 몰랐다”고 불쾌감을 표하기도 했다.
조성모의 예를 들긴 했지만 원곡에 대한 존중은 숱한 리메이크 음반이 감당해야 할 숙제이기도 하다. 리메이크 음반을 만든다는 것에 이미 충분히 상업적인 목적이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리메이크 음반을 만드는 이유는 비교적 명확하다. 이미 시대로부터, 대중으로부터 검증된 노래들을 다시 부른다는 건 그만큼 상업적으로 안전하다는 뜻이다. 김광석의 ‘다시 부르기’ 연작 같은 훌륭한 반례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의 리메이크 앨범은 대동소이하다.
얼마 전 또 한 장의 리메이크 음반이 발표됐다. 지금 젊은 세대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백예린의 ‘선물’이다. 기존 리메이크 음반과 비교해 ‘선물’은 두 가지 큰 차이점을 띤다. 첫 번째는 시대의 흐름과 함께 이제 2000년대 노래도 선곡의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소히의 ‘산책’, 검정치마의 ‘Antifreeze’, 넬의 ‘한계’, 이영훈의 ‘돌아가자’는 2000년대에 나온 노래다. 토이의 ‘그럴 때마다’가 유일한 1990년대 노래다.
또 하나는 이 음반이 철저히 취향에 기반한 선곡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선곡된 노래들은 대중에겐 생소한 노래다. 하지만 막상 들었을 땐 누구나 좋아할 만한 매력이 있다. 백예린은 상업적인 전략보단 이 점에 더 큰 방점을 두었을 것이다. 가령 검정치마의 ‘Antifreeze’는 대중적인 히트곡은 아니지만 아는 사람 모두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노래다. 이런 노래를 백예린이 다시 부르면 어떤 느낌일까 하는 궁금증을 갖게 한 것만으로도 음반의 기획은 충분히 성공적이다. ‘취향의 시대’는 이렇게 리메이크 음반에도 반영되고 있다.
김학선 대중음악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