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英주유소, 휘발유 없어 문닫아… 美항구 화물적체 “컨테이너겟돈”

입력 | 2021-10-13 03:00:00


“휘발유 없어 죄송합니다” 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복스홀 지역에 있는 한 주유소. 공급망 붕괴로 휘발유가 고갈돼 주유기마다 ‘죄송합니다. 사용 불가’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다. 넓은 주유소 공간에 자동차 진입이 없다 보니 한 청년이 자전거 연습을 하고 있다. 런던=김윤종 특파원 zozo@donga.com

‘미안합니다. 사용할 수 없습니다(Sorry. Out of use).’

9일(현지 시간) 영국 런던 중심의 복스홀(vauxhall)에 있는 ‘텍사코’ 주유소의 주유기엔 사용 불가 안내표만 붙어있었다. 휘발유가 없어 운영이 사실상 중단된 것이다. 주유소에서 만난 스미스 씨(52)는 “정부가 주유대란을 해결하기 위해 군부대까지 동원했다는데 여전히 이 모양”이라고 혀를 찼다. 런던 웨스트민스터를 중심으로 반경 6km 내 주유소 7곳 가운데 휘발유 주유가 가능한 곳은 단 1곳뿐이었다.

세계가 ‘공급 쇼크’에 신음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충격이 수그러들면서 수요가 늘고 있는데 위기 때 위축된 공급이 따라주지 못하고 있다. 생산과 물류 공급이 차질을 빚는 ‘병목 현상’에다 원자재 값마저 급등하며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연말 쇼핑 대목을 앞두고 공급망 쇼크와 인플레이션 충격이 겹치면 글로벌 소비시장 위축과 경기 회복세 둔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 항만은 ‘컨테이너겟돈’, 영국은 ‘윈터블루스’


10일 런던 나인엘름스의 대형 슈퍼마켓 웨이트로즈(Waitrose) 생수 구매 코너엔 “죄송하다. 재고가 부족하다.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문구가 붙었다. 장을 보던 조지프 씨는 “이 슈퍼마켓은 영국 왕실에 물건을 납품할 정도로 관리가 철저한 편인데도 이렇다. 런던 외곽은 상황이 더 심각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높은 에너지 가격, 휘발유 부족, 식품 공급망 문제, 코로나19 재확산 등으로 영국은 겨울 우울증(Winter Blues)에 걸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미국에서 두 번째 규모인 뉴욕·뉴저지주 항만 일대도 최근 전례 없는 물류대란이 일고 있다. 8일 뉴욕의 한 항만 운영 책임자는 “항만에 도착한 수입 화물이 트럭에 실려 이동하기까지 (평소의 두 배인) 8일 이상이 걸린다”며 “물류센터 근로자와 도로를 오가는 트럭운전사가 부족해서 발생한 현상”이라고 말했다. 물류업계는 코로나19 위기 초기에 인력을 대규모로 감축했다. 올해 시장 수요가 급증하자 일손 부족에 허덕이고 있다.

인력뿐 아니라 장비도 부족하다. 항만 주변 도로에서 만난 트럭운전사 스콧은 “요즘 나를 포함한 모든 기사들이 섀시(화물트럭 뒤에 연결해 컨테이너를 올려놓는 차대)를 구하기 힘들어한다. 섀시가 없으면 화물 운송을 못 한다”고 털어놨다.

미국에선 항만 적체 대혼란을 뜻하는 ‘컨테이너겟돈(Containergeddon·컨테이너와 아마겟돈의 합성어)’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여기에 선박 운임까지 출렁이며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


공장 멈출까 봐 발전기 돌리는 중국 기업들

즐비하게 늘어선 中 송전탑 11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시 외곽에 있는 공단 방향으로 송전탑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다. 이 송전탑들은 제조기업들이 몰려 있는 주요 공단에 전력을 공급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극심한 전력난으로 전기 공급이 제한되면서 기업들이 낮 시간 동안 조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쑤저우=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

선박 운임은 공급망 교란과 급증한 수요로 치솟다가 최근 전력난이 심각한 중국의 선박 수요가 줄면서 하락하며 안정을 되찾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은 사상 초유의 전력난으로 공장 가동을 멈출 판이다. 11일 중국 장쑤성 쑤저우 외곽 공단의 한 부품회사는 지난달 20일 쑤저우시 담당자로부터 ‘전력 사용을 30% 감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감축 할당량은 지난달 28일 90%까지 올라갔다. 이 회사는 결국 기름을 때 전기를 자체적으로 생산하는 대용량 발전기를 구입했다. 회사 관계자는 “발전기를 확보한 회사는 그나마 다행”이라며 “쑤저우시 내에서 발전기 수요가 급증하면서 대용량 발전기는 구할 수 없는 지경이 됐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전력난은 당국의 무리한 탈탄소 정책과 석탄 주요 수입국이던 호주와의 외교 갈등에 따른 석탄 공급난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했다. 전력난이 길어지면 중국 경제는 물론 세계 경제가 타격을 받을 수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글로벌 공급 쇼크와 국제유가 등 원자재 가격 급등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키우고 있다.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전년 동월 대비)은 7월 5.4%로 2008년 8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한 뒤 5%대를 유지하고 있다. 유로존 소비자물가 상승률도 지난달 3.4%로 13년 만에 최고치로 올랐고, 독일(4.1%)은 30년 만에 최고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2일 ‘세계경제전망’에서 올해 세계 경제성장 전망치를 6.0%에서 5.9%로 하향 조정하며 공급망 차질에 따른 미국 성장률 하락과 독일 제조업의 중간재 부족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일부에서는 공급 쇼크가 시장에서 차차 해소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으면 물가는 오르는데 경기는 꺾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이한상 고려대 경영대학 교수는 “팬데믹 이후 벼랑 끝에 내몰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이 무너지면 실업률이 치솟고 스태그플레이션 상황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박민우기자 minwoo@donga.com
런던=김윤종 특파원zozo@donga.com
쑤저우=김기용 특파원 kk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