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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 칼럼]대통령의 품격

입력 | 2021-10-14 00:00:00

분노에 권력을 탐했던 진나라 때 이사
자신을 가리지 못해 끝이 좋지 못했다
“나는 겁이 없다” 與대선후보 이재명
겁 없이 자유민주주의 흔들까 두렵다



사진공동취재단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이재명은 글도 잘 쓴다. 2017년 대선 전에 내놓은 자서전 ‘이재명은 합니다’의 첫 문장이 ‘나는 겁이 없다’다.

첫 문장 때문에 머리를 쥐어뜯어본 사람은 안다. 그게 얼마나 마술적 시작인지. ‘나는 겁이 없다. 살아가면서 어지간한 일에는 눈도 깜빡하지 않는다… 정치에 입문한 뒤에도 그 이전에도 나는 옳지 않은 일에 맞닥뜨릴 때마다 저항했다…’는 다음 문단까지 순식간에 읽히지 않는가.

자서전에서 보여준 이재명의 삶은 감동적이다. 가난 때문에 어린 공장노동자로 일하다 장애를 입고, 검정고시 출신으로 사법시험에 합격한 성공 스토리는 고 노무현 대통령보다도 극적이다. 팔자를 바꿀 수 있었던 그때, 판검사 같은 출세의 길 대신 자신이 어렵게 자란 성남에서 노동변호사의 길을 택한 젊은 날의 그에게 경의를 표한다.

안타깝게도 이재명의 개인사 아닌 사회에 대한 인식은 거칠고 불길하다. ‘친일세력을 등에 업고 편법으로 정권을 창출한 이승만 정권’ 같은 대목은 그가 법대 시절 읽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해방전후사의 인식’의 영향일 것이다. 7월 대통령 출마 선언 후 “친일세력들이 미 점령군과 합작해 지배체제를 유지했다”는 그의 발언은 지금껏 역사 공부 한번 제대로 않고 과거에 머물러 있다는 걸 시사한다.

‘(기득권 정치가) 대한민국 10% 부유층에 감세를 해주는 만큼 90%의 서민층 국민들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는 대목도 국가경영 자질을 의심케 한다. 근로소득세를 한 푼도 안 내는 노동자가 10명 중 4명이나 되는 사실을 모른다면 무능하고, 알고도 선동할 작정이라면 조악하다. 그래서 대통령이 되면 제일 먼저 뭘 하겠느냐는 김어준의 질문에 “작살부터 내야죠” 했을 것이다.

2017년 대선 도전 이유를 이재명은 분노 때문이라고 했다. 분노의 근원은 정경유착이라며 ‘민주주의를 망치는 부정부패의 꼬리를 잡아 대한민국에서 몸통이라 으스대는 자들을 뒤흔들 생각’을 밝히기도 했다. 이 생각 역시 진화하지 않은 것 같다. 이재명 자신이 설계했다고 밝힌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을 ‘부패기득권과의 최후대첩’이라고 거꾸로, 재빨리 규정한 걸 보면 그의 의식구조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성격과 삶’을 쓴 김창윤 서울아산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이재명의 성격을 ‘외향적 감각형’으로 봤다. 성과가 뛰어나고 임기응변에 능하지만 직관과 감정 부분이 열등해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진다는 거다.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고 미래를 내다보는 통찰력이 없는 사람은 정치지도자로 적합하지 않다고도 했다.

권력에 대한 이재명의 의지와 분노, 그리고 여당 대선 후보 등극은 전국(戰國)시대 말 이사(李斯)를 연상케 한다. 비천하고 곤궁했던 그는 순자(荀子)에게 제왕학을 배우며 재능을 인정받았다. “그대는 총명함이 남다르고 무엇이든 빨리 터득하니 언젠가 꼭 크게 출세할 것”이라는 스승의 칭찬에 이사는 우쭐해 “사람이 가장 비통한 건 빈궁한 것이고 이 모든 것은 권력이 없는 탓이며 권력은 모든 이의 인생을 완전히 뒤바꿀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으로 치면 사이다 발언이다.

이사가 방에서 나가자 순자가 말했다고 한다. “이사는 내 제자 중 가장 뛰어나지만 안타깝게도 세상에 대한 분노가 너무 깊고 권력을 지나치게 좋아하며 자신을 가리는 데 미숙하니 결국 끝이 좋지 않겠구나.”

진시황을 도와 중국을 통일하고 권세를 누린 이사가 결국 비극적 최후를 맞은 역사는 세세히 언급하고 싶지 않다. 겁 없는 이재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철저하고도 신속한 수사 지시에도 눈도 깜빡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이 성남시장으로 있던 2015년 5월 민간업체 초과이익환수 조항이 삭제됐고 자신에게 무죄를 준 대법관도 업체와 관련돼 있다는 게 사태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이재명이 성과만 강조하는 건 문제의 본질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옳고 그름에 대한 감수성이 떨어지거나, 뻔뻔하다고 할 수밖에 없다.

복잡한 개인사로 인해 언행이 거칠 수도 있다. 그러나 윤리적 가치를 가볍게 아는 대통령은 자유민주주의의 가치도 흔들어 위기를 불러올 수 있다고 마이클 블레이크 미국 워싱턴대 교수는 지적했다. 존경할 만한 대통령까진 기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경멸스러운 대통령은 더 이상 없기 바란다. 대통령의 품격은 우리나라의 품격이어서다.



김순덕 대기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