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베르토 자코메티 ‘코’, 1947∼1949년.
피노키오는 1883년 이탈리아 작가 카를로 콜로디가 발표한 동화 속 주인공이다. 거짓말을 하면 코가 길어지는 이 나무 인형 때문에 긴 코는 거짓말의 상징이 되었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 1940년대 중반부터 긴 코를 가진 인물 조각들을 제작했다. 지독한 거짓말쟁이를 표현한 걸까. 동화 속 피노키오보다 훨씬 긴 코를 가졌다.
스위스 태생의 자코메티가 조각가를 꿈꾸며 파리로 향한 건 스무 살 때였다. 고전 조각을 배운 뒤 입체파 양식을 거쳐 1930년대 초현실주의 작품에 몰두했다. 제2차 세계대전은 그의 작품과 의식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상상력이 아니라 현실에 기반한 인체 조각으로 회귀했다. 전후 자코메티는 인체를 가늘고 길게 늘어뜨린 고독한 인물상을 선보이며 실존주의 조각가로 명성을 얻었는데, 긴 코를 가진 두상 조각도 이 시기에 제작됐다.
울퉁불퉁한 질감의 청동 두상은 밧줄에 묶인 채 네모난 철제 틀 안에 대롱대롱 매달려 있다. 눈은 흐리게 묘사됐고 귀는 아예 없으며 입은 크게 벌렸다. 보지도 듣지도 않고 거짓말만 계속했던 건지, 코가 길어져 틀 밖으로 쭉 뻗었다. 그 모습이 마치 긴 총구를 가진 총을 연상시킨다. 크게 벌린 입은 고통의 비명을 지르는 것 같고, 밧줄에 매달린 두상은 교수대를 떠올리게 한다. 작품 속 인물은 자신을 가둔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계속 거짓말해야 하는 운명처럼 보인다.
이은화 미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