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예전 일본인들에게서 곧잘 받은 질문이 있었다. “한국인들은 어떻게 매운 걸 그리 잘 먹느냐?”는 것이었다. 그들은 혼이 다 나갈 듯한 김치 같은 매운 음식을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먹으니 그럴 만도 했다. 심지어 그들은 조수미 같은 세계적인 성악가가 많이 나오는 것도 매운 걸 잘 먹어서라고 생각했다. 어릴 때부터 매운 음식으로 성대를 단련시킨 덕분이라는 것이었다.
그럴 때마다 ‘그런가?’ 하고 넘어가곤 했지만 그들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듯했다. 성악을 받아들인 건 자신들이 훨씬 빠른데 정작 세계적인 성악가는 한국이 배출하는 걸 그렇게라도 이해하고 싶어 했다. 포르투갈 사제들에게서 고추를 먼저 받아들인 것도 자신들인데 왜 한국인들만 매운맛을 민족음식으로 정착시켰는지 신기해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가 즐기는 매운맛은 맛이 아니다. 올해 노벨 생리의학상 수상자(데이비드 줄리어스, 아뎀 파타푸티언)들이 연구로 밝혔듯, 매운맛을 감지하는 건 혀의 미각 세포가 아니라 통각(痛覺) 세포다. 매운맛을 내는 고추 속 캡사이신이 혀의 통점을 자극하면 온도 수용체(TRPV1)가 감지해 위기가 발생했다는 ‘급보’를 뇌에 전한다. 통점이 있는 곳의 세포가 손상돼 통증이 생기고 있다고 말이다. 이 온도 수용체가 하는 일이 위기라 할 수 있는 43도 이상 고온 감지인 걸 감안하면 우리 몸은 매운맛을 맛이 아니라 뜨거운 통증, 그러니까 위기로 여긴다. 매운 걸 먹으면 땀이 나는 이유도 뇌가 혈액순환을 촉진시켜 피부 온도가 올라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매운 음식을 먹지 못하는 사람도 있는데, 이상하게도 새들은 이런 매운 고추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 먹는다. 이들도 매운맛을 즐기는 걸까? 그렇다 해도 너무 잘 먹는다. 이유가 있다. 새들은 매운 걸 못 느낀다.
고추의 이런 노력이 무색하게 우리는 매운맛을 즐긴다. 스트레스까지 속 시원하게 푼다. 이렇게라도 복잡해지는 머리를 싹 비우고 싶어서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정신이 번쩍 드는 매운맛, 뜨거운 고통을 통해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는 위기의식을 더 강하게 느끼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고추가 빨갛게 익어가는 10월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