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가스 밸브’를 쥐고 유럽을 흔들고 있다. 러시아는 유럽 천연가스 소비량의 약 35%를 공급하는데 이달 들어 푸틴의 한마디에 가스 값이 10%씩 오르내리고 있다. 글로벌 공급난으로 가스 값이 1년 새 7배나 폭등하자 러시아의 입김이 세진 것이다. 유럽에선 공장이 멈추고, 서민들이 올겨울 추위에 떨어야 할 처지다. 유럽은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액화천연가스(LNG) 사용을 늘려 왔다. 이를 두고 미국 CNBC는 “유럽이 러시아의 인질이 됐다”고 한다.
▷푸틴 입만 쳐다보던 유럽이 원전을 들고 나왔다. 유럽 10개국 에너지장관들이 11일 “유럽인은 원자력발전이 필요하다”는 공동기고문을 여러 신문에 실었다. 다음 날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새로운 원전 기술에 약 1조4000억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탄소중립’은 해야겠는데 신재생에너지는 아직 믿기 어렵고, LNG 수급은 불안한 게 유럽의 처지다. 영국과 독일은 겨울을 나려고 화석연료 발전을 다시 늘리고 있다. 탈(脫)탄소를 계속하려면 원전 외에 답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LNG 외에도 에너지 값이 폭등하고 있다. 국제 유가는 배럴당 100달러에 다가섰고, 석탄 값도 치솟았다. 코로나 회복세와 겨울철이 맞물려 수요는 급증한 데다 공급망마저 망가진 까닭이다. 친환경 흐름에 따라 채굴량도 급감했다. 에너지 값 상승은 물가 상승을 부추겨 경기 회복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서둘러 값싸고 안정적인 에너지 원료를 확보하는 게 각국 정부의 시급한 과제가 됐다.
▷유럽의 목표는 원전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에너지원이다. 유럽 장관들은 “원전은 전략적 차원에서 에너지 자율성을 확보하게 해준다”고 했다. 탈탄소로 가는 길에서 외부 입김에 휘둘리지 않으려고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는 뜻이다. 한국도 남의 일이 아니다. 유럽처럼 전기를 수입하기도 어려운 처지여서 에너지원을 놓고 주변에 휘둘릴 위험이 훨씬 크다. 탄소 배출이 없는 ‘다른 에너지원’도 필요하다는 유럽의 지적을 우리도 새겨야 할 때다.
이은우 논설위원 lib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