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일해공원? 차라리 각하(閣下) 공원으로?’
15년 전인 2006년 가을 기자가 썼던 본보 ‘동서남북’ 제목이다. 경남 합천군이 ‘새천년 생명의 숲’을 ‘일해공원’으로 바꾸려는 것의 부당함을 지적한 글이었다. 일해(日海)는 11, 12대 대통령을 지낸 합천 출신 전두환 씨(90) 호.
광주 항쟁 단체와 진보진영이 곧바로 들고 일어났고, 반대 여론이 드셌다. 하지만 당시 한나라당(국민의힘 전신) 소속 합천군수는 이를 무시했다. 이 공원은 결국 2007년 초부터 일해공원이란 이름을 달고 지금에 이른다. 전 씨가 쓴 커다란 표지석도 있다.
이 문제가 올 초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자 국민의힘 소속 초선 문준희 군수(61)는 공론화와 여론조사를 선택했다. 최근 지역 6개 언론사의 군민 여론조사에선 명칭 변경 ‘찬성’이 40.1%, 변경 ‘반대’ 49.6%로 나왔다. 한 언론사의 직전 조사와는 반대 결과였다. 이를 두고 다시 논쟁이 시작됐다. “그냥 두라는 것이 군민 뜻이다” “40% 이상이 요구하므로 바꿔야 한다”는 등 백가쟁명이다.
합천군은 흐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문 군수는 15일 “의견을 두루 들은 뒤 군의회와 간담회를 거쳐 내년 초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무소속 배몽희 합천군의회 의장은 “군민 40%가 불편해하는 이름이라면 바꾸는 것이 순리”라고 밝혔다. 배 의장 뜻은 그렇지만 합천군의회는 국민의힘이 다수다. 그래서 예측은 어렵다. 또 흐지부지 넘어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대한민국만큼 돌에다 이름, 공적 새기기를 좋아하는 나라가 또 있을까. 경남도청 넓은 정원엔 표지석 수십 개가 놓여 있다. 정부 관료와 도지사, 도의회 의장 등이 예산으로 나무를 심고 돌을 박아 둔 것이다. 홍준표 전 경남도지사 취임 기념식수엔 표지석이 두 개다. 진보단체 등이 훼손하려던 그의 ‘채무제로’ 표지석을 갖다 두면서 우스꽝스런 모양이 됐다.
교사, 도의원을 거친 문 군수는 역대 합천군수 중 젊은 편이다. 생각도 비교적 균형 잡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제 그가 귀를 열고 지혜를 발휘해야 할 시간이다. 표로 먹고 사는 운명이라지만 오직 군민과 국민, 그리고 역사를 위한 길이 무엇인가에 집중해 결단하면 된다.
강정훈·부산경남취재본부 manma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