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학기-장필순-조규찬-김현철-동물원-유리상자-여행스케치 등 22, 23일 용산 블루스퀘어 공연 1980, 90년대 대학로 울려퍼지던 감성 가득한 노랫소리 귓가에 함춘호 등 정상급 연주자들 참가…여행스케치, 10년 만에 5명 모여
12일 저녁 서울 서초구의 음악 연습실 ‘블루노트’에서 ‘아카이브 케이온’ 콘서트 준비를 위해 만난 기타리스트 함춘호(시인과 촌장)와 가수 장필순(오른쪽). 두 사람의 손과 입에서 ‘나의 외로움이 널 부를 때’ ‘어느새’ ‘풍경’이 풀려 나오는 순간, 가을밤의 시계는 멈춘 듯했다. 일일공일팔 제공
해가 지면 서울 종로구 대학로로 갔다. (김)광석이 형, (박)학기 오빠, (장)필순 누나, 여행스케치 언니 오빠들이 있는 곳. 연인의 손목을 잡고 앉은 극장의 작은 의자에서 TV에는 잘 안 나오는 그들의 땀방울과 음성을 두근대는 가슴으로 느끼고 돌아왔다. 학전 소극장 이야기다.
향기로운 추억들이 손잡고 살아 돌아온다. 동아기획과 학전을 수놓은 음악가들이 2021년 가을, 다시 뭉친다. 22, 23일 저녁 서울 용산구 블루스퀘어 마스터카드홀에서 열리는 ‘아카이브 케이온’ 콘서트를 통해서다. 부제는 ‘우리, 지금 그 노래’. 1990년대 동아기획 음반 시리즈 ‘우리 모두 여기에’에서 따왔다.
12일 저녁 서울 서초구의 한 건물 지하. 어둠과 적막이 지배한 오후 11시 30분의 지상 풍경을 깨우지 않으려는 듯 장필순의 밤안개 같은 목소리가 퍼졌다.
“혹시 탬버린 있어요?”
장필순의 물음에 정지찬 음악감독이 검은 탬버린을 찾아와 손에 쥐여 준다. 보사노바 리듬 위로 이내 찰랑찰랑 탬버린 소리가 스며든다. 이날 연습은 이렇듯 즉석에서 레퍼토리를 추가하거나 편곡 아이디어를 내며 자연스럽게 놀이처럼 진행됐다.
함춘호, 장필순, 박학기, 유리상자, 여행스케치…. 이날 밤, 이들이 시간차를 두고 합류하며 리허설을 가장한 동창회가 이어졌다. 강수호(드럼) 서영도(베이스기타) 정재필 홍준호(기타) 안준영 길은경(건반) 조재범(퍼커션)…. 우리나라 최고 세션 연주자들의 집결도 장관. 전설들이 뿜는 음악의 귀기가 밤을 농밀하게 메웠다. 잘 만든 음악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을 실시간으로 보는 듯했다.
여행스케치도 특별한 무대를 준비했다. 현재는 2인 체제로 활동 중이지만 많은 이들이 5인조 이상의 풍성한 화음으로 여치(여행스케치의 애칭)를 기억한다. 아카이브 케이온에서는 이선아, 성윤용, 윤사라까지 합류해 역전의 멤버가 무대를 꽉 메운다.
멤버들은 “1991년 학전 개관 공연 때 동물원 형들이 펑크를 내는 바람에(웃음) 우리가 대신 선 이후 참 많이 공연을 했다. 당시 동아기획, 하나음악 소속 가수들을 동경했는데 김현철, 이소라(당시 낯선사람들)와 학전에서 어울리며 추억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아카이브 케이온’ 공연 포스터. ‘뉴트로’ 감각을 담아 LP와 카세트를 형상화했다. 일일공일팔 제공
박학기는 “오랜만에 뭉쳤는데 여전히 눈빛만 봐도 척척 음악적 교감이 돼 너무 좋다”고 말했다. 장필순은 “30여 년 세월을 훌쩍 넘어 시간여행을 하는 듯 형언할 수 없는 기분이다. 서로의 노래를 함께 완성해 가는 특별한 무대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고인이 된) (조)동진 형, (김)현식 형도 이 자리에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뭐, 대단한 열풍도 좋지만, 세상에 있는 다양한 색깔의 음악이 함께 공존할 수 있다는 희망…. 이거야말로 이 무대가 소중한 이유 아닐까요.”(박학기)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