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현 정치부 차장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 모두 코로나 시대를 잘 타고난 ‘운빨’ 좋은 사람들이다.”
최근 만난 여당 중진 의원은 여야 대선 주자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 모두 유례없는 팬데믹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것. 자극적인 공약과 파격적 발언들을 앞세워 팍팍한 민생 속 뭐라도 갈아엎어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말초적 욕망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여당 중진 의원은 “문재인 역효과”라고 했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싫어 선한 눈망울의 문 대통령을 뽑았던 국민들이, 지난 5년간 느낀 답답함에 따른 학습효과로, 독하지만 속은 시원한 ‘배드 가이(bad guy)’들의 언행에 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바지 발언’ 이후 잠시 잠잠하던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이 터지면서 다시 연일 막말 중이다. 최근 그의 말과 글 속엔 ‘마귀’, ‘지옥’, ‘집단학살’ 등 일상생활에서 거의 쓸 일 없는 단어들이 쏟아진다. 언론에는 “가짜뉴스로 선량한 국민들을 속여 집단학살을 비호하는 정신적 좀비로 만들었다”고 했고 국민의힘에는 “지금은 마귀의 힘으로 잠시 큰소리치지만, 곧 부패지옥을 맛볼 것”이라고 했다. 야당 지도부에 대한 그의 저주성 폭언 덕에 ‘봉고파직’(부정한 관리를 파면하고 관고를 봉해 잠그는 형)과 ‘위리안치’(유배된 죄인을 가시 울타리에 가두는 형) 등 조선시대 형벌까지 배웠다.
야당 주자들 간 막말 대결에는 피아 구분도 없다. 윤 전 총장이 홍 의원을 향해 “두테르테식(式)”이라고 하자 홍 의원은 “그럼 귀하는 두테르테 하수인”이라고 맞받아쳤다. 한 외교관 출신 인사는 “현직 필리핀 대통령을 너무 함부로 인용하는 외교적 무감각함이 황당한 수준”이라고 혀를 찼다.
이 후보를 향한 독설은 말할 것도 없다. 홍 의원은 이 후보를 베네수엘라 독재자였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에 비유해 ‘경기도 차베스’라고 부른다. 윤 전 총장은 “이재명 패밀리의 국민 약탈을 막겠다”고 했다.
이런 악독한 분위기가 위험한 건 안 그랬던 사람마저 극단적으로 몰아가서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이재명 담당 일진’, ‘대장동 1타 강사’ 등 자극적인 ‘부캐’(제2의 캐릭터)에 힘입어 국민의힘 컷오프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 전 총장과 유튜버 ‘천공 스승’ 간 관계를 파고든 ‘주술 공방’으로 흥행 재미를 봤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