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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에서/김지현]지친 민심 악용하는 ‘배드 가이’ 전성시대

입력 | 2021-10-19 03:00:00

김지현 정치부 차장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 모두 코로나 시대를 잘 타고난 ‘운빨’ 좋은 사람들이다.”

최근 만난 여당 중진 의원은 여야 대선 주자들을 이렇게 평가했다.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재명 경기도지사나, 국민의힘 대선 주자인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홍준표 의원 모두 유례없는 팬데믹의 덕을 보고 있다는 것. 자극적인 공약과 파격적 발언들을 앞세워 팍팍한 민생 속 뭐라도 갈아엎어 보고 싶은 사람들의 말초적 욕망을 잘 활용하고 있다는 얘기다.

또 다른 여당 중진 의원은 “문재인 역효과”라고 했다. 눈으로 레이저를 쏘던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싫어 선한 눈망울의 문 대통령을 뽑았던 국민들이, 지난 5년간 느낀 답답함에 따른 학습효과로, 독하지만 속은 시원한 ‘배드 가이(bad guy)’들의 언행에 끌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런 복합적 배경 속에서 여야 대선 주자들의 혐오와 독설로 점철된 극단 정치가 요즘 정점을 찍고 있다. 내년 대선이 ‘더 나은 사람’보다는 ‘덜 나쁜 사람’을 뽑는 역대급 비호감 대선이란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바지 발언’ 이후 잠시 잠잠하던 이 후보는 ‘대장동 의혹’이 터지면서 다시 연일 막말 중이다. 최근 그의 말과 글 속엔 ‘마귀’, ‘지옥’, ‘집단학살’ 등 일상생활에서 거의 쓸 일 없는 단어들이 쏟아진다. 언론에는 “가짜뉴스로 선량한 국민들을 속여 집단학살을 비호하는 정신적 좀비로 만들었다”고 했고 국민의힘에는 “지금은 마귀의 힘으로 잠시 큰소리치지만, 곧 부패지옥을 맛볼 것”이라고 했다. 야당 지도부에 대한 그의 저주성 폭언 덕에 ‘봉고파직’(부정한 관리를 파면하고 관고를 봉해 잠그는 형)과 ‘위리안치’(유배된 죄인을 가시 울타리에 가두는 형) 등 조선시대 형벌까지 배웠다.

야당 주자들 간 막말 대결에는 피아 구분도 없다. 윤 전 총장이 홍 의원을 향해 “두테르테식(式)”이라고 하자 홍 의원은 “그럼 귀하는 두테르테 하수인”이라고 맞받아쳤다. 한 외교관 출신 인사는 “현직 필리핀 대통령을 너무 함부로 인용하는 외교적 무감각함이 황당한 수준”이라고 혀를 찼다.

이 후보를 향한 독설은 말할 것도 없다. 홍 의원은 이 후보를 베네수엘라 독재자였던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에 비유해 ‘경기도 차베스’라고 부른다. 윤 전 총장은 “이재명 패밀리의 국민 약탈을 막겠다”고 했다.

이런 악독한 분위기가 위험한 건 안 그랬던 사람마저 극단적으로 몰아가서다. 원희룡 전 제주지사는 ‘이재명 담당 일진’, ‘대장동 1타 강사’ 등 자극적인 ‘부캐’(제2의 캐릭터)에 힘입어 국민의힘 컷오프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윤 전 총장과 유튜버 ‘천공 스승’ 간 관계를 파고든 ‘주술 공방’으로 흥행 재미를 봤다.

아무리 정치인의 말과 행동엔 시대적 요구가 담긴다지만 차기 지도자들의 독설 경쟁이 어느덧 공해 수준이다. 11월 초면 우리 사회는 일상으로의 회복을 위한 ‘위드 코로나’ 시대를 시작한다. 정치판도 ‘배드 가이’ 전성시대에서 벗어나 정상 궤도로 돌아가야 할 때다.




김지현 정치부 차장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