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초현실주의 패션
엘사 스키아파렐리와 살바도르 달리가 협업한 슈즈 해트. 사진 출처 팔레 갈리에라 의상박물관
간호섭 패션디렉터
1929년 미국에서 대공황이 일어났습니다. 증권시장에서 촉발된 위기가 1939년까지 이어져 20세기 역사상 가장 길고 힘든 시기를 보내게 됩니다. 현실에 지쳐 탈출구가 필요했던 이들은 근심 걱정을 잊고자 영화에 몰입했습니다. 영화를 볼 때만은 저 너머 아름답고 행복한 세상에 살고 있는 듯했죠.
영화 속 여배우들은 ‘여신’이었습니다. 앞서 유행하던 말괄량이 스타일의 짧은 치마와 소년풍 헤어스타일은 사라졌습니다. 그 대신 슬림하고 긴 드레스와 긴 곱슬머리의 우아한 모습이 부각되기 시작합니다. 독일 출신 마를레네 디트리히, 스웨덴 출신 그레타 가르보처럼 이국적이고 관능적인 스타일이 여성들 사이에 유행하게 됩니다. 이를 가능하게 한 것은 몸매를 드러낼 수 있는 합성섬유의 개발이었습니다. 실크 못지않은 광택과 촉감을 가지면서 가격이 저렴한 레이온 그리고 탄성 소재인 나일론과 라텍스의 개발로 일반 여성들도 할리우드 스타들처럼 곡선미를 드러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패션 흐름에는 초현실주의(Surrealism)라는 예술 사조가 있었습니다. 영어 어원에서 짐작할 수 있듯 현실을 초월한 무의식의 세계, 꿈의 세계를 추구하며 자유로운 상상의 나래를 펼쳤습니다. 문학에서 출발한 초현실주의는 다양한 예술 분야에 접목됐고, 순수 미술에서 더 나아가 영화, 사진, 패션에까지 영역을 넓힙니다.
초현실주의 패션은 팍팍하고 암울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만들어졌지만, 거의 한 세기 후에 돌아보니 미래를 예측했던 ‘초현실 컬래버레이션’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제는 초현실의 세상이 그림의 화폭이나 사진의 인화지에서 벗어나 디지털이라는 가상세계에서 펼쳐지고 있다는 게 다를 뿐이죠. 실제로 가상세계 패션쇼와 아바타 모델이 실현된 지금, 현실세계건 가상세계건 잠시나마 힘든 현실을 패션을 즐기며 잊으시면 어떨까요.
간호섭 패션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