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팝 선두주자 SM엔터테인먼트가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큰 손 CJ ENM 품에 안길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20일 대중음악계에 따르면, CJ ENM은 SM 창업자 겸 최대 주주인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와 인수 여부를 놓고 단독 협상을 진행 중이다.
그간 IT 기반의 거대 플랫폼 기업 카카오가 SM 인수의 유력 후보로 거명됐다. 하지만 최근 인수전에서 발을 뺐다. 인수 조건 등을 두고 이 프로듀서와 이견이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최근 분야를 막론하고 인수·합병을 해온 카카오가 광폭 행보에 부담을 느낀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 프로듀서는 K팝의 아버지로 통한다. 현재 한류의 선봉이 된 아이돌 형태의 전형을 만들었다. SM은 이 프로듀서가 1989년 설립한 SM기획을 모태로 1995년 창립했다.
1996년 데뷔해 국내 아이돌 그룹의 전형을 만든 H.O.T를 시작으로 S.E.S, 신화, 보아, 동방신기, 소녀시대 엑소, NCT, 레드벨벳까지 톱 아이돌 그룹들을 배출했다.
특히 올해 한국 나이로 일흔살이 됐음에도, 아바타를 내세운 메타버스 걸그룹 ‘에스파’를 프로듀싱하는 등 진보적인 프로듀싱 능력을 인정 받고 있다.
현재 이 프로듀서의 지분율은 18.72%(지분 가치 약 3231억원)다. 한편에서는 두 아들에게 회사를 물려줄 수도 있다는 관측도 나왔다. 하지만 두 아들이 엔터테인먼트 회사 경영에 크게 관심이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엔터테인먼트사가 점차 거대해지고, 이에 따라 투명 경영이 요구되면서 더 이상 경영에 관여할 필요가 없어진 이유도 있다. 자신이 잘할 수 있는 프로듀싱에 좀 더 집중하겠다는 얘기다.
이미 이 프로듀서는 지난 2010년 등기이사직을 사임했다. 작년 젊은 피인 이성수·탁영준을 공동 대표로 선임하기도 했다.
이런 엔터테인먼트 업계 변화는 시대의 흐름이다. 올해 들어 방시혁 하이브 의장 역시 대표 자리를 내려놓고, 프로듀서 일에 집중하고 있다. JYP엔터테인먼트의 창업주인 박진영도 등기임원이지만, 스스로 대표직에서 물러나 프로듀서로서 콘텐츠 제작에 주력하고 있다.
중견 K팝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음악인들 출신이라 회사가 커질수록 그 뿌리가 음악에 있다는 걸 정확하게 인지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회사가 안정화되고, 전문 경영인들이 이를 유지해주면서 본인들이 더 마음껏 음악 제작에 집중할 수 있게 된 것”이라고 봤다.
다만 이 프로듀서가 콘텐츠, 즉 지식재산권(IP)을 중요시하는 만큼 회사가 인수되더라도 어떤 형태로든 프로듀서로서의 역할 보존은 요구할 것으로 보인다.
◆CJ ENM 품에 안기면 어떤 시너지가 날까…K팝 지각변동 ‘꿈틀’
CJ ENM은 이 프로듀서의 역할을 최대한 존중해주겠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그간 다른 기획사 수장과 달리 오디션 프로그램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이 프로듀서에게 CJ ENM이 자신들의 장기인 오디션 프로그램 기획 등을 제안할 가능성도 크다.
현재 이 프로듀서는 현재 할리우드의 대형 제작사 MGM과 손잡고 미국을 기반으로 활동할 NCT-할리우드‘ 론칭을 위한 오디션 프로그램을 제작 중이다.
무엇보다 CJ ENM은 SM이 현재 전사적으로 사활을 걸고 있는 ’SM 컬처 유니버스‘(SMCU)를 구현하는데 최적의 회사다.
SMCU는 SM 소속 그룹들이 각자의 세계관 또는 통합된 세계관 안에서 음악, 뮤직비디오, 공연 등 다양한 형태의 독자적인 IP가 서로 연결되고 확장되는 메타버스향 콘텐츠다.
CJ ENM은 미디어 플랫폼뿐만 아니라 음악, 영화, 드라마, 예능 제작 능력을 아우르고 있다. SMCU가 다양한 형태로 확장하는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자본과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SM과 CJ ENM이 만나면 막대한 시너지가 생길 것이라고 업계가 예상하는 이유다.
또 이 프로듀서는 지역에 K팝 문화단지를 형성하는 일에도 관심이 많은데 유통업을 병행하고 CJ ENM의 배급망 등이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현재 CJ ENM은 하이브와 합작 레이블인 ’빌리 프랩‘을 운영하고 있다. 현재 보이그룹 ’엔하이픈‘이 소속돼 있다. 빌리프랩은 조만간 걸그룹 오디션을 열고 제작에 돌입한다.
그러나 SM이 CJ ENM에 인수된다면, CJ ENM은 하이브보다 SM에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SM은 최근까지도 통용돼 온 K팝 3대 기획사 중에서도 사실상 원 톱으로 통했다. 하지만 방탄소년단을 보유한 하이브가 K팝 대표 회사로 나서면서, 예전의 ’독보적‘이라는 이미지는 덜어졌다.
특히 하이브가 방탄소년단의 IP를 기반 삼아 다양한 사업을 벌이며 플랫폼 기업으로 거듭나고 있는 만큼, SM 입장에서도 플랫폼 기업과 협업 또는 다른 조치가 필요했다. CJ ENM 인수는 그런 문제인식의 해답 중 하나인 셈이다.
타 엔터테인먼트사와 인수 합병을 추진한 적이 있는 중견 엔터테인먼트사 관계자는 “CJ ENM의 SM 인수가 성사된다면, 사실상 하이브 1강 체제로 재편된 K팝 시장에 지각변동이 일어날 수도 있다”면서 “국내가 아닌 해외와 경쟁하는 흐름이 된 상황에서 덩치를 키우는 건 필수가 됐다. 다른 엔터테인먼트사들이 인수·합병을 하는데 물꼬가 터지는 계기가 수 있다”고 봤다.
[서울=뉴시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