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학에 다니는 한국인 유학생들은 장학금 받기가 어렵다. 집 주소가 ‘캐슬’ ‘빌라’ 아니면 ‘팰리스’여서 거부의 자제들로 오해받기 때문이다. 엉터리 영어인 콩글리시라도 써야 있어 보인다고 생각하는 한국인의 허영심을 꼬집은 우스갯소리다.
▷콩글리시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이 소설가이자 번역가인 안정효 씨다. 그는 저서 ‘가짜 영어사전’(2000년)에서 콩글리시를 “반쪽짜리 영어, 쭉정이 영어”라고 했다. 콩글리시엔 일본식 영어(Japlish)인 ‘네고’ ‘아파트’ ‘스킨십’ ‘오토바이’와 한국에서 만든 ‘핸드폰’ ‘오피스텔’ ‘아이쇼핑’ ‘애프터서비스’가 섞여 있다. 우리끼린 통하지만 외국인은 모른다. ‘노마크 찬스’는 ‘빵점짜리 기회’, ‘샐러리맨’은 ‘셀러리 파는 사람’, ‘백댄서’는 ‘곱사춤’이라 이해한단다.
▷그렇다고 콩글리시를 피해가기는 쉽지 않다. ‘SNS’ ‘핸들’ ‘팬티’ ‘러닝머신’처럼 이미 입에 붙어버린 단어들이 너무 많다. 영국 일간지 더타임스는 최근 한국의 콩글리시 문화를 조명한 기사에서 한국 정부가 한글날을 맞아 바른 우리말 사용을 촉구하면서도 정부 역시 ‘위드 코로나’ ‘언택트’ 같은 콩글리시를 많이 쓴다고 지적했다.
▷언어는 유기적 존재다. 한때 웃음거리였던 콩글리시가 한류 덕에 영어권에서도 ‘쿨’한 표현으로 각광받는다. 영국 옥스퍼드 영어사전에는 ‘PC방’ ‘스킨십’ 같은 콩글리시와 함께 ‘콩글리시’도 등재됐다. 21년 전 안정효 씨가 싸움 거는 줄로 오해받는다며 ‘파이팅’이란 말을 쓰지 말라고 했는데 요즘은 외국인들이 웃으며 ‘파이팅’을 외친다. 엉터리 언어의 남용도 경계해야 하지만 유연할 필요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브로큰 잉글리시(엉터리 영어)’라는 말이 있다. 현대 영어엔 앵글로색슨어에서 내려온 표현은 20%도 안 남아 있다. 영어의 풍부한 어휘는 중국의 칭글리시, 싱가포르의 싱글리시, 뉴질랜드의 키위 영어, 그리고 콩글리시까지 포용한 덕분이다.
이진영 논설위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