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
배는 화물을 싣고 다닌다. 기본적으로 철판 무게도 있다. 그러므로 선박은 바다에 상당히 깊이 가라앉는다. 수면 아래 부분 부피에 해수의 비중을 곱하면 선박 무게가 된다. 아르키메데스의 원리다. 바다에 가라앉은 깊이를 흘수(吃水)라고 한다. 배의 무게중심을 잡기 위해 밸러스트(ballast·평형수)라는 물을 싣기도 하고 빼기도 한다.
여기에 아주 기초적인 과학이 적용된다. 선박이 추진력을 갖기 위해서는 선박 뒤에 달린 프로펠러가 물에 잠겨야 하므로 화물을 싣지 않았을 때에는 선박에 바닷물을 넣어 배를 가라앉혀야 한다. 선장이 초임 3항사에게 “선창바닥의 밸브를 열어두라”고 지시한다. 3항사는 “그러면 지켜보고 있다가 밸브를 곧 닫겠습니다”라고 답한다. 그러면 선장은 “아니다. 그냥 두어도 된다”고 한다. 이에 걱정이 된 3항사는 “그대로 두면 바닷물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큰일이 나는 것은 아닌지요?”라고 묻고, 선장은 말한다. “이 친구야, 현재 우리 배가 가라앉은 깊이가 10m라면 우리가 아무리 오래 선창바닥 구멍을 열어두어도 10m 이상 물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라”고 설명한다. 그래도 3항사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선장은 “이 친구, 걱정하지 말라니까” 하고 웃는다. 배를 처음 타면 이 부분이 실제 어떻게 될까 걱정이 돼 잠이 오지 않을 지경이다. 하염없이 침수되면 내가 타고 있는 선박이 침몰하니 큰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몇 번 해보면 선박 밑바닥이 열려 있어도 물이 들어오는 높이는 우리 배가 바다에 가라앉은 이상은 아니라는 것을 체험하게 된다. 바다의 법칙이다.
3항사가 혼자 선교에서 당직을 서게 되면 가장 큰 일이 마주치는 선박을 피해 항해하는 일이다. 처음에는 나의 당직 시간에 제발 접근하는 배가 없기를 바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배가 나타나면 그때부터 아랫배가 아프다. 긴장이 돼서 그렇다. 선장부터 부르고 본다. “선장님, 큰일 났습니다. 앞에 배가 나타났습니다”라고 한다. 선장은 몇 마일 떨어졌는지 물어본다. 8마일(약 15km)이라고 하면 선장은 “아직 20분 여유가 있네” 하면서 여유 있게 선교에 올라와 커피를 마시며 피항(避港)을 지시한다.
선장은 다시 말한다. “그래, 그러면 너무 긴장하지 않아도 되지? 자동차 운전과는 다르다. 차분하게 상황을 판단하면 된다.” 그는 충고를 하고 내려간다. 바다에서 일반 선박은 12노트로 항해한다. 따라서 ‘5분에 1마일 우리 배가 항진한다’는 원칙을 알면 피항 시 당황하지 않게 된다. 이런 바다의 법칙은 승선 기간이 길어질수록 항해사 몸에 체화되어 바다에서의 생활을 편안하게 해준다.
김인현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선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