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 미래에셋 회장 단독 인터뷰] 朴, “재벌 세습경영, 세대교체 때마다 활력은 장점” “과감한 세대교체가 조직의 역동성 불러” 조직 노화 방지 위해 대표이사 정년제 도입
박현주 미래에셋 회장이 21일 동아일보 인터뷰에서 “향후 미래에셋 경영에 ‘오너 2세’ 경영은 없다”며 “다만 주식지분을 물려줘 이사회에서 중대한 경영 의사결정에는 참여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동아일보DB
“자녀들은 하고 싶은 일 하게 내버려둬, 지분으로 이사회 참여”
1958년생으로 올해 나이 63세인 박 회장은 오랫동안 미래에셋의 경영 구도를 고민해왔다. 슬하에 두 딸과 아들 하나를 둔 박 회장은 자식들에게 주식 지분은 물려줄 계획이지만 미래에셋의 경영 일선에는 참여하지 않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대주주 자격으로 경영권은 갖겠지만 회사 경영은 전문경영인들에게 맡기겠다는 것이다.박 회장은 “두 딸과 아들은 회사 지분을 가진 대주주로서 이사회에 참여하는 선에서 머물 것”이라며 “세 아이들에게도 이런 얘기를 했으며, 경영에는 개입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둘째 은민 씨는 아직 학생으로 미국 하버드대와 스탠퍼드대 MBA 과정에 모두 합격해 학업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들 준범 씨는 미국 조지워싱턴대를 졸업한 뒤 금융업과는 무관한 국내 한 중견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게임에 관심이 많아 창업을 하거나 기업 인수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박 회장은 자녀들에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사는 것이 좋다”면서 굳이 미래에셋 경영에는 참여시키지 않겠다는 방침을 강조해왔다. 다만 자녀들이 상속받은 지분을 보유하면서 회사 이사회에 참석하는 방식에 국한해 경영에 참여할 것이라고 한다. 이것도 매달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아니라 연 두 세 차례 열리는 확대이사회에 대주주 자격으로 참여하는 선에서 그칠 것이라고 한다.
내년에 창립 4반세기, 39세에 창업해 어느덧 60대
박현주 회장은 39세 때인 1997년 미래에셋캐피탈을 창업해 내년이면 회사 창립 25주년을 맞게 된다. 박 회장은 “100년 기업으로 일구기 위해 전문경영인 체제로 변신할 것”이라고 밝혔다. 사진 동아일보DB
박 회장은 지난해 8월 서울 을지로 미래에셋 본사가 있는 센터원빌딩 35층에 있던 회장 집무실을 뺐다. 이 공간은 현재 최현만 수석부회장이 사용하고 있다. 그룹의 굵직한 의사결정에만 참여하는 박 회장은 글로벌투자 전략을 수립하고, 금융산업의 미래방향을 모색하는 데 전념하고 있다. 명함에는 직함이 미래에셋 글로벌투자(GI)전략가로 돼 있다.
박 회장은 “미래에셋은 앞으로 전문경영인 체제로 전환하게 될 것”이라며 “여느 재벌그룹처럼 2세, 3세로 물려주는 오너의 세습경영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청년들과 샐러리맨의 꿈인 ‘사장’을 미래에셋에서도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뜻이다. 박 회장은 “많은 인재들이 치열한 경쟁을 통해 미래에셋의 CEO(최고영영자)가 되는 길을 활짝 열어놓겠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미래에셋은 전문 경영인을 조기에 발굴해 육성하는 후계 프로그램을 수년 전부터 가동하고 있다. 최경주 미래에셋자산운용 부회장은 “주요 계열사 CEO들은 매년 자신을 대체할 인적 자산으로 누가 있는지를 박 회장에게 추천해야 한다”며 “차세대 CEO를 발굴 및 관리, 육성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며 여기에 속하는 인재들은 전문교육의 기회도 갖는다”고 밝혔다.
“전문경영인 체제, 오히려 조직 동맥경화 우려”
장성한 박 회장의 세 자녀들은 현재 모두 미래에셋에 근무하지 않고 벤처캐피탈리스트와 학업, 중견 기업에 근무하면서 자신의 인생행로를 각각 걷고 있다. 박 회장은 “한국 재벌의 오너 경영은 세대교체 때마다 큰 활력을 얻는 장점이 있었다”고 말했다. 사진 동아일보DB
박 회장은 그러나 전문경영인 체제를 도입한 대기업의 경우 나이가 많은 전문경영인이 오랫동안 자리를 고수하려고 하면서 오히려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노쇠해지는 경향이 뚜렷했다고 지적했다. 노욕(老慾)에 사로잡힌 ‘전문경영인 역설(paradox)’이라는 것이다. 그는 “전문경영인 체제로 모델이 돼 있는 국내 한 제약회사의 경우 연로한 분들이 오래 자리를 지키면서 조직이 경직되고 젊은 아이디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문화도 눈에 띈다”며 경영학에서의 이른바 주주의 ‘대리인비용(agency cost)’이 막대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박 회장은 “경영학에서 마치 전문경영인 체제가 좋다는 식으로 가르치는 경우가 있는데, 전문 경영과 오너 경영은 각각 장단점이 공존하며 한국에서 소유 경영이 괄목한 만한 성과를 냈기 때문에 좋은 점은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재벌의 오너 경영에서 눈여겨 본 것은 다음 세대로 경영권이 넘어갈 때마다 과감한 인적 교체로 젊은 피가 조직에 수혈된 것이 다음 체제를 오히려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가 됐다는 설명이다. 이른바 조직에서 연로한 ‘꼰대’들이 사라지면서 후대 오너 경영인들의 운신 폭이 넓어지도록 길을 터준 것은 대단한 강점이었다고 보고 있다.
“임원도 나이 많으면 물러나도록 장치 강구할 것”
후계 프로그램을 가동하고 있는 미래에셋금융그룹은 해마다 CEO들이 자신을 대체할 인재 명단을 박 회장에게 제출한다. 박 회장은 “전문경영인에게 경영을 위임하면 오너가 부재한 상황에서 고령에도 자리를 고수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이런 모럴해저드를 막기 위해 임원들에게도 정년 제도를 도입해 세대교체가 선순환 되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사진 동아일보DB
박 회장은 “한국 재벌 경영의 장점도 많지만 리스크 또한 만만치 않음을 재벌들의 역사는 보여주고 있다”면서 “한국에서 대기업을 꾸려가는 것은 수많은 법률 리스크를 감수해야 하며, 이런 위기는 오너 경영의 지속 가능성에 위협이 되는 요인”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일부 재벌 경영의 경우 세습을 하지 않았더라면 자녀들이 보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들게 한다”고 토로했다. 고액의 배당만 받으면서도 충분히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는데도 오너 경영의 전선(戰線)에서 고생하는 것은 개인적으로 불행한 일이라고 꼬집기도 했다.
그래서 박 회장이 생각해낸 것은 전문경영인에 대해서도 정년 제도를 도입하는 것이다. 박 회장은 “전문경영인 체제로 갈 경우 전문경영인이 나이가 들어서도 권한을 놓지 않으려는 욕심을 자제할 수 없는 것이 약점”이라며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이끄는 한국에서 이런 사례는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직원들처럼 임원에 대해서도 일정 나이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도록 하는 방안이 좋은 것 같다”면서 “미래에셋금융그룹의 회사정관에 이를 못 박아 시스템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렇게 함으로써 전문경영인 체제가 오히려 조직의 활력을 떨어뜨리고 역동성을 저해하는 것을 제도적으로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다만 임원의 나이 제한을 어느 선에서 정할지에 대해선 고민하고 있다. 삼성그룹의 경우 1970년대 생의 임원 비율이 주류를 차지하는 등 세대교체가 활발한 편이다. 암묵적으로 최고경영자도 62세 부근을 마지노선으로 여기는 대기업도 있다. 하지만 국내 어느 대기업에서도 임원에 대한 정년 제도를 채택한 곳은 아직 없다. 주주총회에서 선임된 임원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면 짐을 싸야 하는 방식이다. 미래에셋의 임원정년제가 도입될 경우 국내 다른 대기업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지 관심이다. 100년 기업을 만들기 위해선 급변하는 경영환경에서 젊은 리더와 조직 문화로 변모해야 한다는 것이 박 회장의 후계 구도의 핵심인 듯하다.
최영해기자 yhchoi6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