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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전쟁 때 학도병으로 참전해 호국 헌신 앞장선 참 신앙인”

입력 | 2021-10-25 03:00:00

故 윤후근 씨 막냇동생 종근 씨
“주위에 선한 영향력이 퍼졌으면…”
유품 78점 순천시에 기증해 화제



23일 전남 순천시 매산중 출신 학도병인 고 윤후근 씨(1931∼1995)의 막냇동생 종근 씨가 고인의 사진을 들고 있다.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 제공


6·25전쟁 발발 직후인 1950년 7월 전남 순천시 매산중 2학년이던 고 윤후근 씨는 학도병으로 참전하기로 결심했다. 학교 친구 6명과 혈서를 쓰고 마음을 다졌다.

하지만 입대는 순탄하지 않았다. 윤 씨는 입대 의사를 밝혔지만 군에서는 “체격이 작다”며 거절했다. 이에 윤 씨는 동네 선배인 군부대 중대장에게 “꼭 입대해 조국을 지키고 싶다”고 호소했다. 어렵사리 입대한 뒤 순천 여수 광양 보성 등 전남 동부권역에서 모인 학도병 180여 명과 함께 특공대로 편성됐다.

10일간 짧은 군사훈련을 받은 학도병들은 같은 해 7월 25일 경남 하동군 화개전투에 투입됐다. 화개전투는 전차 등으로 중무중한 북한군 6사단과 벌인 치열한 싸움으로 6·25전쟁 최초 학도병 전투이다. 화개전투로 학도병 30여 명이 전사하고 50여 명이 부상, 실종됐다. 북한군의 경남 진출을 지연시켜 국군의 낙동강 방어선 구축에 기여했다.

윤 씨는 이후 1951년 4월 경기 가평 일대에서 벌어진 가평전투에 참전했다. 가평전투는 중국군의 남침 계획을 무너뜨리고 피란민들의 대피를 도운 전투다. 윤 씨는 가평전투에서 무릎 부상을 입고 대전 제3육군병원에 입원했다. 치료가 끝나자 군은 의병제대를 시키려고 했지만 거부했다.

윤 씨는 원장을 찾아가 “전쟁터로 다시 가겠다”고 요청했다. 원장은 “전방으로 가지 말고 내 부관으로 군인 임무를 수행하라”고 당부했다. 윤 씨는 원장 부관으로 일을 하면서 의병제대를 청탁하는 사례가 있었지만 모두 거절했다. 1953년 6·25전쟁이 끝나자 일등중사로 전역했다.

학도병으로 참전해 졸업을 하지 못한 그는 1950년대 한센병 환자를 치료하던 여수 애양원에서 검사직원으로 일했다. 1960년대 후반에는 순천에서 처음으로 임상병리사 자격을 취득했다. 또 순천YMCA 시민위원장으로 일하면서 지역 사회 시민운동과 민주화에 헌신했다.

윤 씨가 1995년 작고할 당시 막냇동생 종근 씨(75·사업)는 9남매 중 사실상 큰형님인 그의 유품을 소중하게 챙겼다. 유품은 고인이 6·25전쟁 당시에도 항상 신앙생활을 하며 국가를 걱정하며 간직했던 신앙서적 등이다.

종근 씨는 24일 “6·25전쟁 등으로 가족 3명이 희생됐는데 세월이 흐르자 형님은 모두를 용서하는 삶을 실천했다. 주변에서 형님처럼 숭고한 삶을 산 사람을 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또 “유품이 언젠가는 빛을 발할 것이라고 생각해 소중히 보관했다. 주위에 선한 영향력이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 유품을 기증했다”고 덧붙였다.

종근 씨와 윤 씨의 아들 보열 씨는 고인의 유품 34건 78점을 순천시에 기증했다. 순천시는 유족들에게 감사장과 기증증서를 수여했다. 유품은 순천시기독교역사박물관에서 보존, 관리한다. 허석 순천시장은 “6·25전쟁이라는 국난 앞 지역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이해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했는데 호국을 위해 헌신한 신앙인의 참모습을 이해할 수 있는 소중한 자료를 기증해 줬다”며 감사를 표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