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유동규’ 질문엔 “기억 안나” 박근혜도 최순실을 ‘주변’ 지칭 측근 아니라할수록 커지는 의구심
천광암 논설실장
지난주 경기도 국감에서 이재명 지사의 답변은, 강변이든 궤변이든 대체로 거침이 없었다. 하지만 ‘유동규’ 세 글자만 만나면 ‘크크크’를 곁들인 ‘사이다 화법’이 일순 답답한 ‘고구마 어법’으로 돌변했다. 이틀간의 국감에서 심상정, 이영, 이종배 의원 등 3명이 ‘2010년 유 씨를 성남시 시설관리공단 기획본부장에 임명하는 인사에 지시하거나 개입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을 던졌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기억이 안 난다”는 표현을 18일에 4번, 20일에 6번 썼다.(참고로 이 지사의 측근인 이한주 전 경기연구원장이 임원추천위원회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이 인사에 대해서는 경력 조작, 부실 심사, 맹탕 감사 등의 의혹이 쏟아지는 중이다.)
20일 국감에서 이 지사는 “유 씨와는 작년 말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강조하다가 “유 씨가 압수수색을 당할 당시 자살한다고 약을 먹었다”는 이야기를,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스스로 꺼냈다. 하지만 “누구에게 들었느냐”는 질문이 나오자 또 한 번 “기억이 안 난다”는 방패 뒤로 숨었다. 유 씨가 압수수색을 당한 것은 지난달 29일, 불과 한 달도 안 지난 일이다. 유 씨의 말 한마디에 수사 칼날이 어디로도 튈 수 있는 비상한 시기에, 그처럼 내밀한 정보를 누구에게 들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는 말을 믿으란 것인가.
이 지사는 유 씨와 “오랜 친분”, “가까운 사이”를 인정하면서도 ‘측근’이라는 수식어는 한사코 거부했다. 그리고 그 근거 중 하나로 유 씨가 ‘사장도 아닌 본부장’이었다는 사실을 내세웠다. 얼토당토않은 주장이다. 유 씨는 2015년 3월 대장동 개발 사업자 선정을 불과 보름 정도 앞둔 시점에 임기를 절반도 못 채운 황무성 사장을 밀어내고 직무대리 자격으로 사장 권한을 틀어쥐었다. 후임 사장이 올 때까지 3개월간 벌어진 일이 성남의뜰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민간 분야 초과이익 환수 조항’이 빠진 사업협약서 확정 등의 일이다. 토건 비리세력에 ‘돈벼락’을 안기는 설계 작업이 이 기간 동안 완벽하게 처리된 것이다.
유 씨가 이 지사의 ‘측근’으로 언론에 등장한 것은 9년도 더 된 일이다. 2012년 5월 2일자 한 중앙일간지는 이런 소식을 싣고 있다. 이재명 당시 성남시장이 줄곧 대장동을 공영개발하겠다는 방침을 밝혀왔는데도, ‘측근으로 불리는’ 유 씨가 민관공동개발 방식을 검토 중이라고 밝혀 논란이라는 내용이다. 이에 대해 당시 성남시 관계자는 “시 소유 시설물을 관리하는 기관의 간부가 시장이 외국 출장 중인 시점에 도시개발을 멋대로 발표한 배경을 파악 중”이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이후 대장동 개발은 유 씨가 밝힌 내용대로 진행됐다. 이런 유 씨가 측근이 아니면 비선실세였단 말인가.
2016년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 게이트 파문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자 당시 박근혜 대통령은 3번에 걸쳐 대국민 사과담화를 했다. 1차 때는 최 씨와의 관계를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이라고 했다. 2차 때는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절 곁을 지켜줬다”고 말했다. 3차 때는 “주변을 관리하지 못한 것은 결국 저의 큰 잘못”이라고 했다. ‘비선실세’라는 이미지를 탈색시키기 위해 일부러 사적인 인연을 강조하거나 ‘주변’이라는 모호한 명사를 골랐을 터다.
이 지사의 ‘측근 아닌 가까운 사이’와 박 전 대통령의 ‘어려울 때 도와준 사이’라는 이상야릇한 어법 뒤에 가려진 본질은 같을까, 다를까. 이 지사가 ‘측근’이라는 표현을 밀어내려고 하면 할수록 커지는 의구심이다. 진실을 밝혀내기까지 검경 수사의 갈 길이 멀다.
천광암 논설실장 ia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