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욱 국방부 장관(왼쪽)과 마크 에스퍼 당시 미국 국방장관(오른쪽)이 지난해 10월 14일(현지 시간) 미 국방부에서 열린 제52차 한미안보협의회의(SCM)에서 회담하고 있다. 국방부 제공
신규진 기자
지난달 서울에서 열린 제20차 한미통합국방협의체(KIDD) 회의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예년보다’ 화기애애했다고 한다. 한미 고위당국자 간 국방·외교 정책협의체인 KIDD는 매년 하반기에 개최되는 한미안보협의회의(SCM)의 향방을 가늠하는 사실상의 전초전이다. 제53차 SCM은 12월 2일 서울에서 열린다.
무엇보다 이번 KIDD 회의에서 양국은 국방 분야의 ‘워킹그룹’을 만들기로 합의했다. 미국의 요청을 한국이 받아들인 것으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 정책의 접점을 찾겠다는 취지다. 인도태평양 전략과 관련한 첫 워킹그룹인 만큼 정부 내부에선 미국의 대중(對中) 압박 전선에 한국이 동참하는 시그널을 주변국에 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됐다고 한다.
임기 내내 미중 사이 줄타기 외교를 해왔고, 임기 말 남북관계 개선에 집중하는 정부 입장에선 중국과 북한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는 앞서 6월 북한이 비난해온, 대북제재 면제 여부를 논의하는 한미 워킹그룹을 2년 7개월 만에 폐지했다. 북한은 국방 워킹그룹에 대해서도 24일 선전매체를 내세워 “대북 압박용이자 인도태평양 지역으로 군사력 확장을 위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그럼에도 그간 미국 주도의 4자 협의체인 ‘쿼드(Quad)’ 동참에 미온적이던 한국이 조 바이든 행정부의 동맹 전선 복원에 동참한다는 자체가 갖는 의미는 작지 않다. 워킹그룹 창설을 한미동맹의 신뢰를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향후 워킹그룹의 활동 방향을 섣불리 예단할 수 없지만 임기 말 정부의 외교안보정책에서 미중 간 군사적 긴장 등 외부적 요인이 어느 때보다 큰 변수로 다가온 것만큼은 분명하다.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한 뒤 미국은 쿼드와 3각 군사동맹인 ‘오커스(AUKUS)’ 등을 출범시키며 대중 군사포위망을 겹겹이 쌓고 있다.
8월 아프가니스탄 철군 이후 미국은 대중 전선 구축에 에너지를 쏟아붓고 있고, 이는 임기 내(내년 5월)를 목표로 추진하다 무산된 전시작전통제권(전작권) 전환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번 KIDD 회의에서 우리 정부는 내년 상반기 한미연합훈련에서 전작권 전환 조건 중 하나인 미래연합사령부의 2단계 완전운용능력(FOC) 검증이 실시돼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했지만 미국은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오히려 한국이 FOC 검증을 할 준비가 안 됐다며 거듭된 요구가 현 상황과 맞지 않다는 반응이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7월 취임한 폴 러캐머라 한미연합사령관이 강골 원칙주의자였던 로버트 에이브럼스 전 사령관보다 한국군 상황을 보다 이해하는 분위기라곤 하지만 펜타곤(미 국방부)의 입장은 에이브럼스 사령관 때와 비교해 한 치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1년 전 서 장관이 취임한 지 한 달도 안 돼 열린 제52차 SCM은 말 그대로 ‘참사’였다. 회담의 핵심 책임자인 국방정책실장이 공석이었고 SCM 추진단도 ‘급조’된 데다 내용적으로도 FOC 검증 문제를 포함해 공동성명 곳곳에서 전작권 전환을 둘러싼 한미 간 이견이 드러났다. 미국에선 “훈련 여건 보장 등 한국이 동맹의 기본적인 의무조차 다하지 않으면서 전작권 전환만 정치적으로 밀어붙이려 한다”는 불만이 많았던 게 사실이다.
지난해 참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 SCM을 ‘전작권 조급증’에 매몰되지 않고 한미동맹 전반의 안정성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지적이 그래서 나온다. 게다가 북한은 ‘적대시 정책 철회’를 요구하면서도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신형 미사일 도발을 지속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한미동맹 복원 여부를 최종 판가름할 12월 2일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신규진 기자 newji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