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시험은 한쪽 능력만 과대평가” 정치인이 외면하는 ‘착한’ 포퓰리즘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좋은 대학 진학을 위해 아들딸 스펙 쌓기에 집착한 조국-정경심 부부는 깨닫지 못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마흔 살을 넘기면서 출신 대학이 어딘지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절감하고 있다.
그렇다 보니 공부를 잘 못했던 친구가 훗날 성공하는 것이 이상할 게 없다. 이를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학자를 인터뷰한 적도 있다. 미국 스탠퍼드대에서 창의력을 가르치는 래리 라이퍼 교수다.
그는 인간이 정보를 흡수하는 방식을 2가지로 나눈다. ①칠판 강의 듣기 혹은 출판된 책 읽기와 ②친구들이 모여 앉아 어제 본 TV 드라마를 웃고 떠들며 복기하듯 대화하기다. 전자가 일방향 정보 전달이라면, 후자는 쌍방향이다. “둘 다 50 대 50으로 중요하다는 점은 검증이 끝났으니 토 달지 말라”고까지 했다.
라이퍼 교수의 설명을 전해 듣고 눈물을 글썽인 학부모들도 있었다. “아이가 똑똑한 것 같은데, 시험 점수가 낮은 이유를 이제야 설명 들은 기분”이라고 반응했다.
뭔가 이상하다. 이런 걸 잘 아는 전문가와 당국자들은 왜 그동안 바꾸지 않은 걸까. 사교육비로 고통받는 유권자가 바라는 걸 정치인들이 놓칠 리가 없지 않나. 과문한 탓이겠지만, 정치인 가운데 이런 필요성을 거론한 이는 안희정 충남지사가 유일했다. 그는 2017년 대선 때 “언제까지 인-서울 아니면 루저냐”고 연설했다. 교육정책이라기보다는 세상을 보는 관점을 바꾸자는 주문이었다.
선거 포퓰리즘이라면 유권자의 환심과 표를 사기 위해 필요 이상의 세금을 퍼붓는 걸 말한다. 기본소득(이재명), 반값 주택 50만 호(윤석열), 쿼터 아파트(홍준표)가 그런 쪽이겠다. 그렇다면 청소년과 학부모에게 안 가져도 될 열패감을 덜어주는 구상과 정책은 포퓰리즘일까. 환심과 표를 살 수 있어 대중영합적이긴 하지만 ‘착한’ 포퓰리즘으로 부르고 싶다. 교육과 평가의 개념을 바꾸는 과정은 지난하지만 현금복지 공약과 달리 큰돈이 들 것 같지 않다. 전문가의 깊은 궁리, 일선 교사의 장기적 관심과 노력이 훨씬 중요한 성공 열쇠다.
대장동과 고발사주라는 진흙탕을 헤매는 후보들이지만 대통령을 꿈꾼다면 달라진 세상을 읽어내야 한다. 칠판 앞 강의와 객관식 시험은 인류 역사에서 딱 100년쯤 먹혔던 제도다. 교육시장과 학부모의 마음을 잘 읽는 수능 1타 강사들이 한발 먼저 내다보고 있다. “수능은 죽었다”며 학생 평가 방식의 사망 가능성을 경고하고 있다.
김승련 채널A 취재윤리·멘토링 에디터 sr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