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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2쿠데타 가담, 6·29선언 거쳐 대권… 퇴임후 비자금 투옥

입력 | 2021-10-27 03:00:00

[노태우 1932∼2021]영욕의 정치 역정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 입교


12·12쿠데타(1979년), 6·29선언(1987년), 3당 합당(1990년), 비자금 사건(1995년)….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련된 한국 정치의 역사적 사건은 지금도 국민의 뇌리에 생생하다. 신군부 핵심으로 1979년 12·12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한 그는 육사 11기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1988년 제13대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취약한 지지 기반과 사회 혼란 등으로 조기에 레임덕이 찾아왔다. 특히 퇴임 2년여 만에 터진 4000억 원 비자금 사건으로 퇴임 후 결국 법정에 서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보냈다.

○ 군인에서 대통령으로, 그리고 3당 합당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지휘부

육사 내 사조직인 ‘하나회’ 출신으로 9사단장이었던 노 전 대통령은 1979년 12월 12일 쿠데타에 가담했다. 1981년 육군 대장으로 예편한 그는 전두환 대통령 시절 내무부 장관 등을 지내며 정권의 핵심 역할을 했다. 1985년에는 2·12총선에서 국회에 진출해 민주정의당 대표위원으로 활동하며 ‘후계자’ 지위를 보장받았다.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호헌(護憲·현행 헌법 유지) 선언’을 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감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분노와 어우러졌고 민심은 극도로 이반됐다.

1987년 민주 정의당 대선 후보로 지명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하는 6·29선언 발표

1987년 ‘6월 민주항쟁’은 전국으로 퍼져 갔고, 그해 6월 29일 노태우 당시 민정당 대표는 직선제 수용, 김대중 사면복권 등 8개 항의 ‘6·29선언’을 발표했다. 그는 같은 해 대선에 민정당 후보로 출마해 야권이 통일민주당 김영삼, 평화민주당 김대중 후보로 분열된 상황에서 36.6%의 득표율로 당선됐다.

‘3당 합당’ 발표 1990년 1월 22일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가운데)이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왼쪽)와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함께 청와대에서 ‘3당 합당’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은 오늘날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뿌리가 됐다. 동아일보DB

1988년 13대 총선에서 최초로 ‘여소야대(與小野大)’ 국회가 탄생했고, 노태우 정권은 정계 개편을 도모했다. 1990년 1월 노 대통령은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와 함께 3당 합당을 공식 선언했다. 이로써 민주자유당(국민의힘의 전신)이 출범해 거대 보수정당의 시대가 시작됐다. 그러나 이미 노 전 대통령의 힘은 빠지고 있었다. 1992년 김영삼 대표가 차기 대통령 후보로 선출되자 9월 18일 노 전 대통령은 민자당을 탈당했다.

○ 4000억 원 비자금과 기나긴 투병 생활
김영삼 정부 들어 12·12쿠데타에 대한 단죄 여론이 불길처럼 일었다.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그해 10월 19일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비자금 규모는 4000억 원에 달했다.

검찰은 전직 대통령 최초로 노 전 대통령을 소환 조사했고 결국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 혐의로 구속했다. 그는 군 형법상 내란 혐의 등으로도 추가 기소됐고 1997년 4월 대법원에서 최종 징역 17년, 추징금 2629억 원의 형이 확정됐다. 1997년 12월 18일 김영삼 정부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고, 2013년 9월 230억 원을 마지막으로 16년 만에 추징금을 완납했다.

그는 퇴임 후 외부 활동을 삼간 채 사실상 은둔 생활을 했다. 지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며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2002년 미국에서 전립샘암 수술을 받았고, 2008년에는 희귀병인 소뇌 위축증 판정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 재헌 씨는 2019년 이후 매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 사죄의 뜻을 표해 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