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우 1932∼2021]영욕의 정치 역정
1951년 육군사관학교 11기 입교
12·12쿠데타(1979년), 6·29선언(1987년), 3당 합당(1990년), 비자금 사건(1995년)….
26일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과 관련된 한국 정치의 역사적 사건은 지금도 국민의 뇌리에 생생하다. 신군부 핵심으로 1979년 12·12쿠데타를 일으켜 권력의 핵심부에 진입한 그는 육사 11기 동기인 전두환 전 대통령에 이어 1988년 제13대 대통령으로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러나 취약한 지지 기반과 사회 혼란 등으로 조기에 레임덕이 찾아왔다. 특히 퇴임 2년여 만에 터진 4000억 원 비자금 사건으로 퇴임 후 결국 법정에 서고 영어(囹圄)의 몸이 되는 등 순탄치 않은 인생을 보냈다.
○ 군인에서 대통령으로, 그리고 3당 합당
1979년 12·12 군사쿠데타 지휘부
그러나 ‘대통령 직선제 개헌’ 요구를 무시하고 ‘호헌(護憲·현행 헌법 유지) 선언’을 한 전두환 정권에 대한 반감과 대통령 직선제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박종철 군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분노와 어우러졌고 민심은 극도로 이반됐다.
1987년 민주 정의당 대선 후보로 지명
1987년 대통령 직선제를 약속하는 6·29선언 발표
‘3당 합당’ 발표 1990년 1월 22일 당시 민주정의당 총재인 노태우 전 대통령(가운데)이 통일민주당 김영삼 총재(왼쪽)와 신민주공화당 김종필 총재와 함께 청와대에서 ‘3당 합당’을 공식 발표하고 있다. 3당 합당으로 출범한 민주자유당은 오늘날 국민의힘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뿌리가 됐다. 동아일보DB
○ 4000억 원 비자금과 기나긴 투병 생활
김영삼 정부 들어 12·12쿠데타에 대한 단죄 여론이 불길처럼 일었다. 1995년 검찰은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며 불기소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그해 10월 19일 당시 민주당 박계동 의원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의혹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돌변했다. 비자금 규모는 4000억 원에 달했다.그는 퇴임 후 외부 활동을 삼간 채 사실상 은둔 생활을 했다. 지병으로 입·퇴원을 반복하며 서울 연희동 자택에서 투병 생활을 이어갔다. 2002년 미국에서 전립샘암 수술을 받았고, 2008년에는 희귀병인 소뇌 위축증 판정을 받았다.
노 전 대통령은 5·18민주화운동에 대해 직접 사과하지 않았다. 다만 아들 재헌 씨는 2019년 이후 매년 광주 국립5·18민주묘지를 참배하면서 사죄의 뜻을 표해 왔다.
유성열 기자 r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