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거인멸 우려 있다고 보기 어려워”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에 연루된 손준성 검사가 26일 오전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으로 들어가고 있다. 양회성 기자 yohan@donga.com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26일 기각됐다.
손 검사의 구속영장실질심사를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이세창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이날 오후 10시 40분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점, 향후 수사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피의자 진술 등을 종합하면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고 판단된다”며 영장을 기각했다. 20일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사흘 만인 23일 이례적으로 조사 없이 구속영장을 청구한 공수처의 수사 적정성 등을 놓고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확대하려고 했던 공수처의 계획에도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앞서 공수처 여운국 차장 등은 26일 오전 영장심사에서 “손 검사가 변호인 선임 등을 이유로 조사를 미루고, 출석 약속을 어기고 조사에 불응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손 검사 측은 “앞으로 수사 절차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맞섰다.
공수처 ‘고발사주 의혹’ 수사 확대 차질
법원, 손준성 ‘1호 구속영장’ 기각“피의자에 대한 출석요구 상황 등 이 사건 수사 진행 경과 및 피의자에게 정당한 방어권 행사의 범위를 넘어 증거를 인멸하거나 도망할 우려가 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법원은 26일 오후 10시 40분경 손준성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한 사유를 이같이 밝혔다. 올 1월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립 후 ‘구속영장 청구 1호’ 사건은 공수처의 ‘구속영장 1호 기각’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남기게 됐다.
법원의 영장 기각에는 공수처가 대선 후보 경선 일정 등을 고려해 무리하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손 검사 측의 반발도 일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는 손 검사의 구속영장에 고발장 작성자를 ‘성명 불상’이라고 밝힐 정도로 수사 진척이 없었다. 그런데도 손 검사의 조사를 굳이 야당의 대선 경선을 앞둔 이달 하순에 해야 하는 이유를 공수처가 법원에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다. 공수처는 고발장 작성자뿐만 아니라 전달 경로 등에 대해서도 명확한 수사 결과를 내놓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따라 손 검사의 신병을 확보한 뒤 수사를 확대해 윗선의 개입 여부 등을 확인하려고 했던 공수처는 수사 일정을 불가피하게 더 늦춰야 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영장은 기각됐더라도 손 검사가 출석 조사를 미룰 명분은 사라졌다고 공수처는 기대하고 있다. 당초 손 검사가 출석 요구에 불응하자 출석을 압박하기 위해 구속영장을 청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이다. 공수처 안팎에서는 손 검사와 김웅 의원 등에 대한 조사가 빠르면 이번 주 내에 진행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영장심사에서 판사 출신으로 사법연수원 23기 동기인 여운국 공수처 차장과 손 검사 측 이상원 변호사 등 양측은 3시간 가까이 공방을 벌였다. 공수처는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실의 수사관들이 고발장 첨부자료인 판결문을 열람한 사실 등을 손 검사의 개입 근거로 제시했다. 반면 손 검사 측은 공수처가 20일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이 기각되자 조사 없이 23일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손 검사는 또 “나는 (윤 전 총장의) 지시 받고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