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뉴욕시 한 상점 유리창에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뉴욕시는 지난 13일부터 식당과 체육과 등 실내 시설 이용시 코로나19 백신 접종 증명을 의무화했다. [뉴욕=뉴시스]
25일(현지 시간) 미국 뉴욕 맨해튼 서부 9번가에 있는 한 피자집. 가게 내부는 그리 크지 않았지만 점심시간을 맞아 포장과 배달 주문이 정신없이 이뤄지고 있었다. 그러나 주방을 포함해 보이는 직원은 3명뿐이었다. 가게 밖에서 볼 수 있도록 ‘직원 구함(Help Wanted)’이라고 쓴 공지문이 유리창에 붙어 있었다.
이 피자집을 운영하는 존 아카디 씨는 기자에게 “주방과 계산원을 포함해 직원이 3명 정도 더 필요한데, 다른 모든 곳들처럼 우리도 직원 구하기가 너무 힘들다”면서 “직원들이 금방 그만두거나 파트타임으로 일하는 경우가 많아 사람은 항상 필요하다”고 말했다. 아카디 씨는 일할 사람을 구한다는 공고문을 늘 걸어두는가 하면 얼마 전엔 종업원을 더 데리고 있기 위해 보수 등 인센티브도 올려줬다고 했다. 요즘 맨해튼 거리를 걷다 보면 5~10분에 한 번씩은 ‘직원 구함’이란 공지문이 붙은 가게를 볼 수 있다. 대형 마트나 프랜차이즈 가게들도 마찬가지다.
사람 모자라 식당 폐업, 거리엔 쓰레기 쌓여
일손 부족으로 미국 기업과 음식점, 상점들은 직원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급여나 복지 혜택을 늘리고 재택·유연 근무를 허용하는가 하면 직원들의 마음을 잡기 위해 자동차를 경품으로 나눠주는 기업도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지난주 ‘베이지북’이라고 불리는 경기동향 보고서에서 “근로자 확보에 실패한 기업들은 영업시간을 줄이거나 업무 자동화로 대응하고 있다”고 적었다.
사람 대신 일할 ‘서빙 로봇’을 들여놓는 곳도 등장하고 있다. 플로리다주의 쿠바 음식 체인 세르히오스는 직원을 구하기 위해 일자리 박람회를 여는 등 많은 노력을 했지만 사람을 구하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결국 이 식당은 매달 1000달러(약 170만 원)를 들여 매장에 서빙 로봇을 들여놨다.
신규 채용 못지않게 기존 직원들의 이탈도 기업들의 고민거리다. 미국 노동부 집계에 따르면 올 8월 한 달 동안만 430만 명이 자발적으로 직장을 그만뒀고 기업들의 구인 규모는 1000만 명을 넘었다. 모두 연초보다 30~40% 급증한 수치다. 최근 트럭운전사 부족으로 물류대란이 벌어지고 있고, 일부 학교는 스쿨버스 운전기사가 모자라 다시 원격수업으로 되돌아갔다. 환경미화원이 부족해 길거리에 쓰레기가 쌓이는 곳도 있다. 미국 언론에 따르면 플로리다주 잭슨빌과 애틀랜타, 덴버 등 주요 도시에서는 인력 부족으로 쓰레기 수거가 지연되고 악취가 발생하면서 주민 민원이 급증하고 있다.
여러 요인이 한꺼번에 작용한 결과
미국의 이런 이례적인 구인난은 여러 원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온다. 우선 최근 베이비부머 세대들이 대거 은퇴하면서 노동인구 자체가 감소한 점이 꼽힌다. 마켓워치에 따르면 세인트루이스 연방준비은행의 미겔 파리아 카스트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팬데믹 이후 올 8월까지 미국의 ‘초과 은퇴자’가 300만 명을 넘는다는 분석을 내놨다. 코로나19만 아니었으면 아직까지 일터에 있었을 미국인들이 팬데믹 때문에 그만큼 일찍 은퇴했다는 것이다. 팬데믹이 발발하자 건강을 염려한 고령 근로자들이 계획보다 먼저 직장을 떠났다는 분석도 있다.
높은 실업수당도 구인난의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팬데믹 이후 연방정부는 주정부가 지급하는 실업수당에 더해 주당 300달러의 수당을 추가 지급해왔다. 이로 인해 일주일 평균 약 700달러(약 82만 원)를 받게 된 실업자들이 직장을 서둘러 구할 이유가 없어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다. 연방정부의 추가 수당 지급은 논란 끝에 결국 지난달 종료됐다. 하지만 이후에도 구인난은 계속되고 있다.
뉴욕=유재동 특파원 jarret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