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
10월부터 일주일에 두 번 서는 동네 장터에 ‘짱가’처럼 등장하는 상인이 있다. 바로 굴 장사다. 한국과 달리 프랑스에는 먹기 좋게 까놓은 봉지 굴을 팔지 않기에, 굴 장사로부터 석화를 사들고 집에 올 때가 종종 있다. 가족과 함께 굴을 먹는 상상만으로도 군침이 돌지만 사실 가장은 열심히 굴을 까기만 할 뿐 입에 들어가는 게 거의 없을 때가 많다. 12개 단위로 파는 굴을 36개 또는 48개 사 와서 까기 시작하면 까기가 무섭게 다른 식구들이 입으로 흡입하고 겨우 서너 개만 먹고 입맛만 다시다 끝난다.
굴을 까려면 한 손에 목장갑을 끼고 다른 손에 굴 칼을 다부지게 쥔 다음, 껍데기와 닿은 근육인 내전근을 질러야 한다. 처음에는 손도 다치곤 하지만 방법을 깨치고 나면 한결 쉽게 깔 수 있게 된다. 다만 먹고 난 후 빈 껍데기 정리까지 생각하면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이러한 수고 대신 굴을 편히 먹고 싶을 땐 포르투갈인이 운영하는 해물요리 식당인 페드라 알타, 김연아 선수가 들러서 한국인 사이에서도 유명한 몽파르나스의 르 돔 카페 등에 들러 굴을 즐긴다. 여유가 있다면 대표적인 굴 산지인 캉칼이나 아르카숑으로 여행을 간다.
굴을 먹는 방식에서 한국과 프랑스는 극명히 구분된다. 수년 전 캉칼에 굴을 먹으러 갈 때 한 가족은 한인 마트에 들러 초고추장을 준비했다. 눅진한 초고추장을 굴 위에 쭉 짜서 굴 수십 개를 게 눈 감추듯 먹어 치웠는데 어림잡아 한 가족이 굴 100개를 먹어 치웠다. 초고추장이 없을 때는 현지 방법을 따르는 게 합당하다. 프랑스에 처음 왔을 때는 초고추장을 챙겼지만 이제는 현지인처럼 굴에 레몬즙이나 에샬로트라는 양파 비슷한 것을 잘게 썰어 식초와 함께 먹는데, 산뜻함이 돋보인다. 그라인더로 간 후추를 넣어 먹는 등 굴을 먹는 방식은 다양한데, 소금기가 있는 버터 바른 식빵을 함께 먹는 게 여기 사람들의 방식이다.
선사시대부터 먹어 왔다는 굴은 유럽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 왔다. 태양왕 루이 14세는 매일 캉칼에서부터 나귀 등에 굴을 가득 실어 오게 해서 식사 전 70여 개를 먹었다고 한다. 나폴레옹 3세는 굴 번식기인 여름이면 낚시를 금지하는 등 굴 보호 정책에 공을 들였을 정도다.
찬바람이 불면 호빵이 생각나는 우리네와 달리, 프랑스에서는 늦가을 문턱부터 굴 생각이 간절해진다. 굴 50여 개를 까먹은 후 차곡차곡 쌓인 굴 껍데기를 바닷가에 내던졌던 캉칼의 굴 포장마차가 더욱 생각나는 요즘이다.
정기범 작가·프랑스 파리 거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