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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孫영장에 ‘고발장 성명불상이 작성’… 법조계 “수사 낙제점”

입력 | 2021-10-28 03:00:00

[고발사주 의혹 수사]공수처 1호 ‘손준성 영장’ 기각 파장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과 관련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가 청구한 손준성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이 법원에서 기각되면서 수사에 차질이 불가피해졌다. 27일 오전 김진욱 공수처장(왼쪽 사진)이 정부과천청사로 출근하고 있다. 27일 새벽 구속영장이 기각된 뒤 손 검사가 경기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과천=양회성 yohan@donga.com / 의왕=송은석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을 수사 중인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가 손준성 검사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27일 법원에서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각되면서 역풍이 불고 있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지난해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두고 고발장을 작성하게 하고, 이 고발장을 국민의힘 김웅 의원에게 전달한 혐의가 있다면서 중범죄로 구속 수사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A4용지 20쪽 안팎의 구속영장청구서에는 고발장 작성의 주체와 공모자를 성명불상으로 기재했다. 올 1월 설립된 공수처는 ‘1호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기각으로 수사 능력을 의심받게 된 것이다. 이 때문에 결정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한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과 구속영장을 서둘러 청구한 배경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법조계에서 제기되고 있다.

○ 공수처 “성명불상과 공모, 성명불상이 작성”

동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손 검사에 대한 26일 구속영장실질심사에서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수사 절차보다는 수사 내용으로 구속 여부를 판단하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공수처가 20일 체포영장이 기각된 뒤 곧바로 23일 구속영장을 청구한 수사 절차가 쟁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과는 다른 것이었다.

공수처가 손 검사에게 적용한 직권남용 혐의 등은 유죄 입증이 까다롭고, 결과적으로 무죄율이 높아 더 치밀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것이 법조계의 의견이다. 예를 들어 손 검사가 고발장을 직접 작성했다면 직권남용죄 적용이 어렵고, 만약 부하 직원에게 시켰다면 ‘손 검사의 지시로 의무 없는 일을 했다’는 부하직원의 피해자 진술이 필수적이다. 그런데도 공수처의 구속영장청구서에는 “손 검사가 성명불상의 상급 검찰간부들과 공모해 성명불상의 검찰공무원에게 고발에 필요한 자료를 수집하고, 고발장을 작성하도록 했다”는 문구가 적혔다. 공수처는 손 검사가 김 의원에게 고발장을 직접 전달했다고 했지만 텔레그램의 ‘손준성 보냄’ 표시 외에는 이를 입증한 증거를 제출하지 못했다. 손 검사에 대한 영장심사 당시 이세창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고발장 작성 주체를 묻자 공수처는 누군지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법조계에선 공수처의 수사 내용에 법원이 낙제점을 준 것으로 평가하고 있다.

○ “팀의 방침” 공수처 지휘부 지침 논란

손 검사의 변호인은 27일 “전날 오전 9시 20분경 공수처 모 검사가 손 검사에 대한 구인장을 집행하며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바로 알려주지 못해 미안하다, 팀의 방침이라 나도 어쩔 수 없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주장했다. 공수처는 23일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는데 손 검사에게는 25일 오후 통보했고, 손 검사는 이에 반발해 법원에 영장심사 연기를 요청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손 검사 측 주장이 사실이라면 공수처 지휘부가 손 검사에 대한 방어권 침해를 지시한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공수처는 “변호인이 사전 통보하지 않은 데 대해 항의했을 때 검사는 ‘구인장이 발부되고 통보한 것’이라고 답했다”면서 “‘상부 지침으로 늦게 통보했다’거나 ‘미안하다’ 같은 말은 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공수처는 당초 손 검사를 김 의원보다 먼저 조사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영장 기각으로 고발장을 전달받은 김 의원으로부터 진술을 먼저 받아낸 뒤 손 검사를 나중에 조사하는 쪽으로 방향을 바꾼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손 검사가 출석에 불응한다는 이유로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체포영장이 기각된 이후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공수처가 영장 기각 이후 수사 계획을 180도 바꾼 것을 납득하기 어렵다는 비판이 나온다. 수사 경험이 부족한 공수처 조직이 수사 실무에서 한계를 드러낸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검찰에 대한 견제 기관으로 출범한 공수처가 수사 의지만 앞세웠다가 인권 침해 비판까지 자초하고 있다”고 혹평했다.




고도예 기자 yea@donga.com
유원모 기자 onemor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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