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검 통해 국정농단처럼 수사해야”
박근혜 정부 시절 ‘국정농단’ 사건으로 총 징역 21년을 선고받은 최순실(최서원으로 개명·65·사진) 씨가 29일 경기 성남시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및 로비 의혹에 대해 “특검을 통해 국정농단 수사 때와 똑같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 씨는 또 현재 서울중앙지검 전담수사팀을 겨냥해 “이런 검사들이 국정농단 수사를 수사했다면 나는 무죄가 나왔을 것이다”고도 했다. 최 씨는 충북 청주시 청주여자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최 씨는 24일 파란색 펜으로 작성한 9장 분량의 편지를 동아일보 기자에게 보냈다. 이 옥중편지에 따르면 최 씨는 박근혜 전 대통령과 자신을 수사했던 박영수 전 특검의 잣대와 상반된 현재 검찰 수사 방식에 문제를 제기했다.
● 최 씨 “대장동 수사, 보여주기식 조사해”
최 씨는 “이번 대장동 의혹 사건 수사는 거꾸로 가고 있다”며 “녹취록을 절대적 증거로 넘겨받고도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하고, 서로 각기 다른 진술에 끌려다닌다”고 비판했다. 그는 “진실을 밝히기보다는 이미 결정된 수순으로 가고 보여주기식 조사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라며 “당시 박 특검이 혐의를 정해 놓고 진행했던 수사 방법하고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 씨는 박 전 특검 수사 당시에 벌어졌던 강도 높은 수사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최 씨가 2016년 12월 24일 특검에 불려갔을 때 수사 검사는 몇십년 전 대구 달성 선거 때 박 전 대통령과 자신이 통화한 녹음파일을 들려주며 “그때부터 이미 박 전 대통령과 한 몸이었고 경제공동체였다”고 말했다고 한다. 최 씨는 “특검은 처음부터 경제공동체 논리를 가지고 있었고, 그리고 그날 새벽쯤 부장검사는 그걸 실토하라면서 하지 않으면 삼족을 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협박을 했다”며 “내 평생에 잊지 못할 잔인한 날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이처럼 “검찰의 수사는 대체적으로 방향을 정하고 그걸 가지고 수사를 끌고가고 정황 파악을 해나가는 게 순서인 것 아닌가 싶다”고 덧붙였다.
● “유동규 휴대전화 못 찾은 검찰, 코미디”
최 씨의 편지는 뒤로 갈수록 박 전 특검에 대한 비판 수위를 높였다. 그는 “당시 박 특검은 특검에 파견된 검사들과 함께 이 나라의 경제계, 정치계, 박 전 대통령의 측근부터 모조리 불러 종일 수사실에서 강압적인 수사를 하며 무소불위의 권력을 갖고 무릎 꿇게 했다”고 적었다. 재단에 기업이 출연한 기부금을 뇌물로 몰기 위해서였다고 했다. 최 씨는 “그런 박영수가 다른 한쪽에서 화천대유 관련 고문료를 받았다니 세상이 정상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박 전 특검이 친척에게 100억 원이 간 것에 대해 합당한 돈이라고 얘기하는 걸 보면서 그런 돈이 그들에겐 푼돈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경악스럽다”고 했다.
● “어린 딸이 아기 젖물리던 병실서 압수수색하더니, 왜…”
그러면서 최 씨는 “어린 딸이 손자를 갓 낳아서 젖 물리고 있던 병실에 쳐들어가서 휴대폰을 압수수색했으면서 대장동 관계자들의 압수수색은 왜 똑같이 악랄하게 하지 않은 것인가”라고 되물었다. 그는 “대장동 사건은 누가봐도 모두가 경제공동체로 이익을 나눴고, 한 사람은 대법관 사무실을 민감한 시기에 자기 집처럼 드나들었다”며 “그들 사이에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고 봐야 하지 않나”라고 반문했다.
최 씨는 “박 전 특검의 묵시적 청탁의 범위가 누구나 들어갈 수도 방문할 수도 없는 권순일 전 대법관 방문을 일상적인 만남으로 본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믿기 어렵다”며 “누가 봐도 묵시적 무엇인가 있었는지를 조사해야 하고 박 전 특검이 적용했던 묵시적 청탁으로 의구심을 갖고 조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최 씨는 “그렇게 정의롭다던 검찰은 실종되었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는 “타짜들이 판돈을 깔고 나눠먹은 돈을 판 깐 사람이 모른다고 하니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 이 나라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고 썼다.
● “변호사비 대납 의혹, ‘우겨대기’ 가관”
최 씨는 더불어민주당 안민석 의원이 자신의 변호인인 이경재 변호사에 대해 국정농단이 한창인 2015년 9월 누구의 추천으로 화천대유의 고문을 맡았는지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에 대해선 “너무 어이가 없고 황당하여 말이 안 나온다”며 “개인 변호사가 어디서 고문비를 받는지 내가 어찌 알며 어찌 나랑 연결시키는지…”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어 “내가 없으면 국회의원직 유지가 안 되는지…”라며 “완전 스토커로 신고해야 할 것 같다”고 비꼬았다. 지난달 서울남부지법은 최 씨가 안 의원을 상대로 낸 1억 원의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안 의원은 최 씨에게 1억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안 의원은 2016년부터 2017년까지 최 씨 일가가 박정희 정권의 불법 자금 등으로 축적한 수조 원대의 재산을 독일 등에 숨겼다고 하는 등 은닉재산 관련 의혹을 제기했다.
최 씨는 또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의 변호사비 대납 의혹에 대해서도 “이름있고 명성있는 사람들이 그냥 이름만 올리는 경우는 대개 나중에 돈을 받기로 하거나,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논의한 게 아닌가 묻고 싶다”며 “무게 있는 변호사가 1명도 아니고 3~4명이 2억~3억 원을 가지고 수임했다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했다. 이어 “이름 있는 변호사들 근처에 가려면 사건당 몇억은 요구하고 사건도 골라가면서 하던데”라며 “이 나라에서 벌어지는 ‘우겨대기’가 정말 가관이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 영화같은 타짜 놀이의 대장동 사건에 반드시 특검을 통해 누가 해먹었는지, 그 큰 판을 깔고 나눠먹은 자들의 배후는 누군지 밝혀내야 다시는 이 나라에 이런 악덕업자들이 국민들의 피를 빨아먹지 못할 것이라 생각하면서 국정농단 수사했던 잣대와는 너무 상반된 검찰의 수사 방식에 가슴이 터질 것 같아 이 글을 쓴다”고 글을 맺었다.
배석준 기자 euliu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