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건한 한미동맹 속 대화” 초보적 주장만 국격, 국제정세 꿰뚫는 역량 갖춘 리더 누구
길진균 정치부장
“누가 될 것 같아요?”
정치부 기자라고 하면 사석에서 이렇게 묻는 사람이 적지 않다. 알 수 없다. 예상 시나리오에 없던 돌발 변수들이 한 달이 멀다 하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게 이번 대선이다. 투표일은 앞으로도 4개월 넘게 남아 있다. 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겠는가. “아직 모른다” 또는 “하늘이 알겠죠”라고 웃어넘기곤 한다. 그럼 수심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 묻는다. “○○○가 정말 될까요?”
반복되는 이런 질문과 답변이 중요한 게 아니기에 답답할 때가 있다. 핵심은 ‘누가 더 대통령 자격이 있는가’다. 자격도 여러 가지다. 그중에서도 이번 대선에서 가장 소홀히 취급 받는 대목이 외교 역량인 듯하다.
동아일보가 국민의힘 1, 2차 경선 과정에서 치러진 10차례의 TV토론회에서 후보들이 주장한 내용을 음성-텍스트 변환 인공지능(AI) 서비스로 전수 분석했다. ‘국민’ ‘대통령’을 제외하면 ‘이재명’ ‘대장동’ ‘고발사주’ ‘화천대유’ 같은 단어들이 상위 톱10 키워드를 점령했다. ‘핵’이 상위권에 들긴 했지만 이 역시 “한국도 핵을 보유해야 한다” “미국과 핵을 공유하겠다” 등 일부 보수층의 ‘핵 보유’ 주장을 옮긴 정도에 불과하다. 국제사회가 추구하는 핵 확산 방지체제를 한국이 어떻게 극복하겠다는 것인지, 득실은 어떤지를 깊이 있게 논쟁하는 장면은 없다. 어떤 후보는 전술핵과 전략핵을 구분하지 못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다음 정부 출범과 함께 새 대통령이 맞닥뜨릴 핵심 과제는 한미관계와 한중관계의 재설정이다. 쿼드(Quad) 등 동맹을 중심으로 한 미국의 중국 견제 흐름 속에서 국익을 어떻게 지켜낼지, 한국은 큰 숙제를 안고 있다. 하지만 최근 토론회나 여야 후보 간 공방에서 한미, 한중관계가 주요 키워드로 거론된 적이 없다. 후보들이 이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도 알 수 없다.
한일관계에 대해서는 “죽창가를 부르다 한일관계가 망가졌다”(윤석열 전 검찰총장) 등 ‘반(反)문재인 외교’면 한일관계도 풀릴 것이라는 단순 논리나, 독도 표기 문제를 두고 “역사적 기록도 남길 겸 올림픽 보이콧을 검토해야 한다”(이재명 후보) 등 지지층을 겨냥한 강경 발언만 난무하고 있다.
국무총리를 지낸 한 원로인사는 “이재명 윤석열 홍준표를 보면 셋 중 누가 대통령이 돼도 국제무대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해 정상회담 또는 다자회담을 하는 모습이 잘 그려지지 않는다”고 했다. 국격과 국제정세를 꿰뚫는 역량을 갖춘 리더십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길진균 정치부장 leon@donga.com